“가위질당하기보다 모자이크 택했다”

  • 입력 2009년 3월 10일 02시 57분


제한상영 논란 ‘숏버스’ 12일 개봉… 미첼 감독 전화 인터뷰

존 캐머런 미첼 감독(46)은 한국에서 등급 문제로 논란이 된 영화 ‘숏버스’에 대해 “모든 관객이 볼 만한 영화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말처럼 이 영화의 등급을 잘 설명해주는 말도 없을 듯하다.

섹스 상담가 소피아의 오르가슴 탐구를 그린 이 영화는 배우들의 실제 정사, 집단 섹스와 자위 장면 때문에 2007년 영상물등급위원회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국내에는 제한상영관이 없어 상영금지와 같다는 이유로 대법원까지 가는 소송 끝에 “음란영화로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받았다. 특정 부분을 모자이크 처리한 뒤 18세 이상 관람가로 12일 개봉한다. 미국에서는 등급외(NR) 판정을 받고 2006년 10월 등급외전용관에 걸렸다.

미첼 감독을 6일 전화로 만났다. 미국 뉴욕 자택 욕조에 앉아서 전화를 받은 그는 “세상과 섹스가 학교, 부모, 할리우드 상업영화가 알려주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다고 생각하는 관객을 위해 숏버스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물소리가 들린다. 피곤한 하루였나.

“전등을 끄고 욕조 주위에 촛불을 밝힌 채 멍하니 앉아 있었다. 니콜 키드먼과 작업하는 신작 ‘토끼 굴’ 준비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래도 기분 좋은 피곤함이다.”

―의도가 어떻든 방법이 과격하면 반감을 얻기 마련이다. 배우들이 꼭 실제 섹스를 해야 했나.

“강도 높은 섹스 신은 영화적 언어에 대한 실험이었다. 포르노처럼 관객을 흥분시키려 한 게 아니다. 소피아가 간절히 추구하는 오르가슴은 인생의 소중한 가치에 대한 은유다. 영화에서 한 여성 캐릭터는 ‘오르가슴이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란 걸 느낄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한다.”

―오르가슴이 그렇게 대단한가. 소피아가 불행한 건 오르가슴을 못 느껴서가 아니라 거기 너무 집착하기 때문 아닐까.

“동의한다. 하지만 음악에서 얻는 감성의 농도는 사람마다 다르다. 음악을 즐기지 못하는 사람은 심할 경우 음악을 두려워하게 된다. 섹스도 마찬가지다. 소피아는 직업상 타인과 자신의 섹스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다. 인터넷 때문에 육체와 성에 대해 적나라하게 알고 있는 현대인을 상징하는 캐릭터다. 섹스를 잘 알고 있으면서 마음 편히 즐기지 못하는 그로부터 섹스에 대한 ‘질문’을 끌어내고 싶었다.”

―영화 속 집단섹스도 그런 ‘질문’의 한 방법인가. 오히려 그 사람들은 어쩐지 더 외로워 보인다.

“외로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쳐도 사람은 결국 외롭다. 하지만 외롭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용기는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제도가 정한 길을 벗어나 자기 나름의 방식대로 행복을 찾는 데는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하다.”

―결과적으로 포르노와 다를 게 뭐냐는 지적이 있다.

“반문하고 싶다. 포르노란 무엇인가. 주제에 접근하는 진지한 태도에 관계없이 성(性)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영화는 모두 포르노인가. 지난해 6월 공연차 한국에 갔을 때 숏버스 속 파티 장소처럼 인테리어를 꾸민 홍익대 앞 클럽에 초대받았다. 그렇게 영화의 진정성을 읽어낸 소수의 관객이 이 실험이 쓸모없지 않았음을 증명해 준다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숏버스와 관련해 벌어진 논란을 어떻게 지켜봤나.

“일본도 한국과 비슷했다. 표현의 자유를 바라보는 가치 기준은 문화권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내 전작 ‘헤드윅’을 미국 관객보다 더 많이 사랑해 준 한국 관객에게 가위질당하지 않은 숏버스를 선보이고 싶었다. 그래서 문제로 지적된 부분의 모자이크 작업을 직접 했다. 개인적으로는 서글픈 타협이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동아일보 손택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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