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타 길들이기 “난 ‘리타’가 아니에요. 똥같은 이름 버렸어요”

  • 입력 2008년 4월 4일 08시 15분


‘나 이대 나온 여자야!’ 영화 ‘타짜’에서 김혜수가 경찰의 제지를 뿌리치며 불쑥 이 문장을 던진다. 이 때 격앙된 음성의 한국어가 묘한 매력을 풍긴다. 연극 ‘리타 길들이기’의 ‘리타’는 연극 밖에서 고상한 어투로 이렇게 외칠 것이다. ‘나 교양 있는 여자야!’

‘리타 길들이기’는 왈가닥이었던 미용사 리타가 영문학 교수 프랭크에게서 문학 수업을 받으며 변해가는 얘기다. ‘교육 받은 여자’가 되길 원했던 리타는 드레스 새로 사는 걸 참고, 대학 문학 강좌를 신청한다.

“그런 거 있잖아요. 방에 앉아서 텔레비전으로 발레나 오페라 같은 거 보면서 그걸 쓰레기라 그러잖아요. 왜냐하면 그게 그렇게 보이니까. 이해를 못하니깐. 어떻게 봐야 될지를 모르니까요. 그냥 채널을 돌려버리거나 스위치를 꺼버리고는 ‘저런 찢어죽일 쓰레기’라고 그래버리잖아요. 그런데 그러고 싶지 않아요. 전 그걸 볼 수 있게 되고 싶거든요. 이해할 수 있게요. 제가 욕하는 거 거슬리세요?”(리타와 프랭크 교수의 첫 만남 장면 중에서)

뼛속까지 변화를 원했던 리타는 살아오면서 쓰레기로만 보였던 어려운 예술작품을 공부하기 시작한다. 이 과정에서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프랭크 교수는 새로운 활력을 느끼고 리타의 변화에 동참한다.

이 연극은 처음부터 끝까지 리타와 프랭크의 대화로 가득하다. 리타는 프랭크의 질문에 답하고 답하다 결국 대답을 스스로 찾아간다. 자기가 쓴 보고서를 프랭크가 어떻게 평가할까 노심초사하고 처음 본 셰익스피어 연극에 감동 받아 넋을 잃기도 한다.

문학은 계몽이 아니라 깨달음이었다. 하지만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은 필수! 리타는 프랭크에게 애증의 감정을 느끼고 힘들어한다.

“제가 싫어지신 거예요? 전 이제 교육받은 여자예요. 선생님이 갖고 있는 거 저도 갖고 있어요. 근데 선생님은 그게 싫은 거예요. 왜냐면 그냥 제가 옛날처럼 촌뜨기 무식쟁이로 있으면 좋겠으니까. 선생님도 남들하고 똑같아요. 자기 옆에 있는 사람이 계속 둔탱이였으면 좋은 거죠. 그러면 계속 매력적이고 흥겨운 인간으로 남아있을 테니까. 저 선생님 필요 없어요. 난 어떤 옷을 입어야 될지도 알고, 어떤 연극을 보고, 어떤 페이퍼하고 어떤 책을 일어야 될지 알아요. 나 선생님 없이도 해 나갈 수 있어요. 리타? 리타? 아무도 나 리타라고 안 불러요. 선생님 말고는. 나 그 허세나 부리는 똥 같은 이름 버렸어요. 그 책이 어떤 건지 제대로 알게 되자마자. 이 바보같은… 아무도 나 리타라고 안 불러요”( 리타와 프랭크 교수의 갈등 장면 중에서)

리타가 성숙한 리타로 거듭나면서 주목할 것은 그의 신발과 원피스, 바로 의상이다. 리타는 점점 검정 구두와 파스텔톤의 코트로 의상을 바꿔간다. 일부러 교양 있는 말투를 쓰겠다고 목소리를 고쳐보기도 하고, 하이톤의 음색도 자제한다.

생활에서 자신을 절제하는 법을 익히는 게 행복일까? 마음속에 있는 것을 거침없이 앳된 말투로 쏟아냈던 리타가 결국 문학을 통해 성숙한 리타로 변해갈 때 내면의 변화란 무엇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리타는 문학이라는 다른 삶의 재미를 찾지만 날 것의 발랄함을 잃는다. 깔깔거리며 자기를 표현하던 리타와 고전을 음미하게 된 충만한 리타 중 누가 더 아름다운지는 관객의 몫이다.

이 작품을 보면 관객은 어떤 방식으로든 일상의 변신을 꿈꿀 수 있게 된다. 그것이 문학이든, 연극이든, 리타처럼 활발히 찾아볼 일이다.

‘리타 길들이기’를 보면 리타의 얼굴이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My Fare Lady)’의 오드리 햅번과 겹친다. 거리에서 꽃을 팔던 오드리 햅번은 언어학자 히긴스 교수를 만나 교육을 받고 완전히 다른 여성으로 탄생한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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