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쉬’하다 ‘폐인’까지… 동성애, 용감해졌다

  • 입력 2006년 11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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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역사의 한국 퀴어 영화는 얼마나 진화했을까? ‘퀴어(queer)’란 ‘동성애자’를 가리키는 영어 표현. 극장에서 개봉된 장편 영화 중에서 동성애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은 1996년 ‘내일로 흐르는 강’, 2002년 ‘로드 무비’, 그리고 16일 개봉하는 ‘후회하지 않아’ 등이 있다.》

‘내일로…’가 만들어진 때는 동성애자 인권운동이 싹을 틔우던 시기였으며 2000년대 이후 동성애는 ‘개인의 성적 취향’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06년, 동성애 코드가 들어간 ‘왕의 남자’가 관객 1000만 명을 기록한 영화가 됐고, ‘야오이(남성 동성애를 그린 일본 만화와 소설) 문화’를 즐기는 여성 관객이 늘어나고 있다. 시대 변화에 따라 한국의 퀴어 영화는 사회에서 개인으로 시선을 돌리고 더 과감해졌으며 아직은 소수이긴 하지만 조금씩 대중의 지지도 늘고 있다.

내일로 흐르는 강 - 중년 남성의 과감한 애정표현

“형도 날 사랑하고 있다는 걸 보여 줘.”(정민) “그러니까 너도 장가를 가.”(승걸)

격변의 현대사 속의 가족 얘기가 유교적이고 봉건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라는 정민의 눈으로 펼쳐진다. 어른이 된 정민(이대연)은 성정체성을 깨달은 뒤 50대 남성 승걸과 동성애를 나누게 된다. 한국 현대사와 가족 관계 속에서 한국인, 중년 남자, 동성애자라는 정체성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는 것. 상대 남성은 가정에 충실한 가장이며 동성애자임을 숨기고 이중적 삶을 살지만 괴로워하지는 않는다. 섹스 장면은 없고 ‘뽀뽀’를 하거나 이불 속에서 꼼지락대는 정도. 영화평론가 심영섭 씨는 “그 시대에 과감하게 중년 남성의 동성애를 그렸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고 말했다.

로드무비 - 거리의 인생들, 알몸으로 만나다

“사랑 같은 거, 하기 싫다.”(대식) “미안하지만 난 변태가 아니야.”(석원)

동성애자인 거리의 인생 대식(황정민)과 이성애자인 실패한 펀드 매니저 석원(정찬)이 우연히 만나 길을 떠난다. 대식은 석원을 사랑한다.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비루한 인생, 소외된 자들이다. 대식은 한때 결혼해서 아이도 있었지만 자신의 정체성을 깨달으면서 가족을 버리고 나왔다. 그러나 자신의 사랑을 드러내지 않고 자기 학대와 혐오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석원은 그런 대식을 경멸한다. 동성 간의 섹스 때문에 화제는 됐지만 평가는 극과 극이었고 관객은 외면했다.(전국 1만8000명)

후회하지 않아 - 자기감정에 솔직-충실한 게이들

“당신은 부자여서 도망갈 곳이 많겠지만 나는 아무 곳도 없어. 나 잊어요.”(수민) “너랑 있으면 단단해져….”(재민)

부잣집 아들 재민과 게이 호스트바 ‘선수’인 수민의 사랑. 직설적인 신파 멜로다. 커밍아웃한 게이 감독이 만든 이 영화의 동성애는 사회적 발언의 도구라기보다 사랑 그 자체다. 캐릭터들의 자기혐오나 정체성에 대한 부정은 없다. 물론 사회나 가족 안에서 어려움이 있고 둘의 계급적 차이나 게이 호스트바의 모습이 자본주의적 현실을 드러내지만 주인공들은 제목처럼 ‘후회하지 않고’ 욕망에 충실하다. 이송희일 감독은 “1970년대 호스티스 멜로 장르를 빌려 만든, 사랑 앞에 솔직하자는 교훈극”이라고 자평했다. 둘의 사랑은 남녀 간의 사랑과 똑같다. 한눈에 꽂히고 질투하고 집착하고. 한 동성애자는 “말투나 게이 문화 등이 현실적으로 반영됐다는 점에서 시선이 내부적”이라고 말했다. 이성애자 관객들이 개봉 전부터 보내는 열렬한 지지도 흥미롭다. ‘후회폐인’이라 불리는 이들은 팬 카페를 조직하고 ‘홍보팀’을 자처한다. 주로 ‘야오이 문화’를 즐기는 여성 관객들이다. 꽃미남 열풍, 연상 연하 커플 등 능동적으로 예쁜 남자를 즐기는 여성들의 취향이 반영된 결과로 풀이된다.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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