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홍찬식]‘황우석 죽이기’의 미스터리

  • 입력 2005년 12월 7일 03시 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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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PD수첩이 겨냥했던 최종 목표는 ‘황우석 교수의 줄기세포 논문은 가짜’라고 밝히는 것이었음이 드러났다. 황 교수팀의 윤리 문제를 제기한 뒤 누리꾼의 몰매를 맞자 억울한 나머지 또 다른 의혹을 제기한 게 아니라 처음부터 ‘논문은 가짜’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던 것이다.

PD수첩팀이 미국에 찾아가 ‘가짜 논문’에 대해 연구원 2명을 취재한 시기는 10월 20일이었고, 윤리 문제를 처음 제기한 ‘황우석 신화의 난자 의혹’ 편이 방영된 것은 한 달 뒤인 11월 22일이었다. 윤리 문제는 예고편이었고 본편은 ‘가짜 논문’을 파헤치는 것이었다는 얘기다.

과학자가 허위 논문을 발표하면 어떤 불이익을 받을까. 2002년 ‘사이언스’와 ‘네이처’에 게재된 논문이 가짜로 판명돼 세계 과학계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미국 벨연구소의 한 연구원이 스캔들의 주인공이었다.

그는 획기적인 논문을 연이어 발표했다. 하지만 다른 과학자들이 후속 실험을 해 봐도 동일한 데이터가 나오질 않았다. 의문이 꼬리를 물자 벨연구소는 내부 조사를 통해 ‘데이터 조작’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사이언스’ 등은 논문 게재를 취소했다. 해당 연구원은 박사학위를 박탈당하고 과학계에서 추방됐다.

PD수첩팀은 연구원들에게 “황 교수를 죽이러 왔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공영방송의 PD가 어떻게 독재 시절의 정보기관이나 조폭을 연상시키는 ‘험한 말’을 할 수 있을까 놀랍지만 따지고 보면 ‘황 교수 죽이기’라는 표현이 틀린 것은 아니다. 논문이 가짜로 판명나면 황 교수는 정말로 ‘죽을’ 수밖에 없다.

실제 과학자가 허위 논문을 발표하는 일은 거의 없다. 계산된 수치로 말해지는 과학계의 자정 능력 때문이다. 줄기세포 연구처럼 각국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야의 논문은 더 철저히 검증된다. 벨연구소 연구원의 가짜 논문은 진상이 밝혀지기까지 1년여밖에 걸리지 않았다. 세계적 수준에 오른 황 교수와 연구진이 이런 자살행위를 할 것으로는 여겨지지 않는다.

PD수첩의 중대한 착오는 황 교수 논문이 가짜인지 아닌지 스스로 과학적 검증을 해낼 수 있다고 믿었던 데 있었다. 과학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이처럼 비상식적으로 나서진 못했을 것이다.

그래도 여러 의문점이 남는다. 무엇보다 이해되지 않는 건 PD수첩팀이 연구원들을 취재했을 때의 살벌한 분위기다. “황 교수는 구속되고 세상이 바뀔 것”이라며 그들이 쏟아낸 말들은 증오와 적개심으로 가득 차 있었다. 꼭 이런 말을 해야 취재가 됐을까.

이번 파문의 한편에선 진실보도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PD수첩의 취재윤리에 문제가 있었지만 진실보도 또한 외면돼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황 교수 논문도 진실보도의 대상인 것은 맞다. 그러나 과학 발전을 위해 힘써 온 순수한 열정의 과학자들을 마치 범죄자처럼 몰아세웠던 PD수첩의 행태에는 ‘진실보도’를 위한 취재정신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있다.

공영방송의 주요 포스트가 정권과 코드를 같이하는 인사들로 채워진 지 오래다. 정권은 그들을 한없이 감싸고 있다. 통제받지 않는 방송의 오만과 독선이 이번 사태를 불러온 것은 틀림없다. ‘코드’ 단체들의 침묵과 ‘PD수첩 편들기’도 눈에 띈다. ‘남’이 아닌 ‘우리’가 한 일은 절대 틀릴 리 없다는 패거리주의가 취재원에 대한 협박과 강압을 정당화했던 건 아닌지 모르겠다.

혹시 신화(神話)처럼 된 황 교수를 고발함으로써 과학기술 우대라는 전반적인 실용주의 흐름에 이의를 제기하려고 했던 건 아닐까. 황 교수를 그토록 죽이고자 했던 진짜 이유가 궁금하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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