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이라크戰 뉴스인지…게임중계인지…

  • 입력 2003년 3월 25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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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3차원 그래픽을 이용, 탱크와 전투기 병사들의 모습과 움직임을 게임처럼 보도함으로써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알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KBS MBC 화면
국내 방송사들이 경쟁적으로 3차원 그래픽을 이용, 탱크와 전투기 병사들의 모습과 움직임을 게임처럼 보도함으로써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알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KBS MBC 화면

“이라크 전쟁은 MBC와 함께!” “전쟁의 생생함을 더하기 위해 버추얼 스튜디오로 옮기겠습니다.”

국내 방송사들의 이라크전 관련 뉴스가 지나치게 선정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방송사들이 버추얼스튜디오(KBS)와 매직스튜디오(MBC) 등 가상 스튜디오에서 탱크 전진과 폭격기의 무차별 폭격 장면을 컴퓨터 그래픽으로 재구성해 전쟁을 ‘게임화’하고 있다는 것. 특히 설명의 보조 자료인 컴퓨터 그래픽이 프로그램의 ‘목적’이 되면서 전쟁 중계를 넘어 전쟁을 ‘창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실과 비현실 사이

23일 KBS1 ‘뉴스9’의 버추얼 스튜디오는 공격용 헬기와 탱크가 포격을 가하며 사막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효과음과 함께 그래픽으로 전달됐다. 전폭기가 투하한 폭탄이 바그다드 시내에 비오듯 떨어지며 시가지가 초토화되는 장면도 그래픽으로 묘사됐다.

이라크의 미사일 반격을 설명하는 대목에서는 포탄이 떨어진 곳에 해골 표시가 등장하기도 했다.

같은 날 MBC ‘뉴스데스크’는 매직스튜디오를 통해 미군 탱크가 사막을 질주하는 모습과 항공모함에서 출격한 전투기들이 바그다드 시내에 폭탄을 투하하는 장면도 그래픽으로 보여제다.

○워 게임?

방송국 인터넷 게시판에는 방송사들의 뉴스에 대해 “‘전쟁 게임’을 보는 것 같다”고 지적하고 있다.

“컴퓨터 그래픽 처리된 비행기와 전차들이 불을 뿜었다. 대단한 테크놀러지인양 자랑을 하고 있다. 전쟁이 무슨 게임인가”(신나라) “스타크래프트 리니지 등 PC 게임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도 실제 인간을 살육하는 전쟁을 게임 소프트처럼 보여주는 방송뉴스에 대해서는 왜 침묵하는가?”(귀연악동) “전쟁은 게임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성을 말살하는 현실이라는 사실을 방송이 알려야 한다.”(김정헌)

방송영상산업진흥원 송종길 책임연구원은 이에대해 “국내 TV 뉴스가 CNN 등 미국 방송을 여과없이 보도하면서 ‘제3자 입장’에 매몰됐다”며 “최근 북핵 문제로 인해 한반도에 조성된 긴장을 염두에 두지 않고 ‘우리와 무관한 전쟁’으로 인식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혼란스런 아이들

이같은 국내 방송사들의 TV 뉴스는 아이들에 대한 ‘시청 지도’의 필요성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연세대 김주환 교수(신문방송학)는 “연합군의 입장에서만 전쟁을 보는 시각이 지배하면서 TV 저널리즘의 균형이 문제되고 있다”며 “아이들이 이라크군을 적군으로만 받아들일 공산이 있다”고 염려했다.

특히 아이들이 전쟁 장면에 오래 노출될 경우 연령에 따라 △엄마로부터 떨어지지 않으려 하거나 낯가림이 심해지고(3,4세) △걱정과 짜증이 늘고 등교를 거부하는 등 예민해지며(5∼11세) △공격적 행동과 반항, 학업 포기(청소년기) 등 외상후스트레스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순천향대 부천병원 신경정신과 이소영교수(소아정신과)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기 시작하는 6, 7세 이전 아이들이 그래픽이나 잔인한 전쟁 장면에 노출될 경우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구분하지 못하면서 지각능력에 장애가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대병원 신경정신과 조수철 교수는 “자녀들에게 이번 전쟁을 선악 개념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감이 있다”며 “전쟁이란 반드시 비슷한 힘 사이의 갈등 때문이 아니라 한쪽 힘이 월등히 우월할 때도 일어난다는 사실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승재기자 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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