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김소영감독 ‘하늘색 고향’ 2년만에 상영관 찾아

  • 입력 2003년 3월 13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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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맡은 정명화씨와 함께다큐멘터리 ‘하늘색 고향’의 김소영 감독 (왼쪽)과 주제가를 무상으로 연주해준 첼리스트 정명화씨. 사진제공 씨네마야
음악 맡은 정명화씨와 함께
다큐멘터리 ‘하늘색 고향’의 김소영 감독 (왼쪽)과 주제가를 무상으로 연주해준 첼리스트 정명화씨. 사진제공 씨네마야
역사 교과서에서 두 세줄에 불과한 기록이 어떤 이들에게는 한맺힌 인생 역정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잊기 쉽다.

1937년 구 소련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에 따라 연해주에서 중앙 아시아로 옮겨간 한인들의 삶이 그렇다.

김소영 감독은 단 두줄의 기록에 현미경을 들이대 97분짜리 다큐멘터리 영화 ‘하늘색 고향’을 탄생시켰다.

영화의 중심축은 신순남 화백이다. 1928년 연해주에서 태어나 아홉 살 되던해 현재 우즈베키스탄 타쉬켄트로 이주했다.

가축과 화물을 실어나르던 기차에 20여만명의 한인들이 짐짝처럼 실려 새 땅에 도착했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가난과 질병뿐이었다.

신 화백은 당시의 기억을 되살려 생애의 역작인 ‘레퀴엠’을 그렸다. 가로 44m, 세로 3m의 화폭에 그는 한인들의 좌절과 슬픔을 담아냈다. 밑그림 완성에만 16년을 보냈고 이후 14년간 작업했다.

이때 그의 나이 62세. 1997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그의 초대전에는 19일만에 관객 5만명이 몰리는 등 관심을 끌었다.

김 감독도 당시 미술관을 찾았다.

신순남 '레퀴엠'.

“‘레퀴엠’을 보는 순간 압도당했어요. 영화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겁도 났어요. 주제도 너무 무겁고, 해외촬영할 생각을 하니 막막했죠. 하지만 저 할아버지도 평생에 걸쳐 이런 엄청난 작품을 남겼는데 나도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하지만 다큐멘터리 영화에 투자자가 선뜻 나타나지 않았다. 김 감독은 우즈베키스탄에 공장을 두고 있는 대기업에 도움을 요청해 1000만원을 지원받았다. 촬영이 없는 날엔 스태프들이 라면 박스를 들고 한인 교회를 다니며 모금활동을 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많은 무상 지원이 있었다.

이 영화의 주제가인 ‘엄마야 누나야’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이영조 교수가 작곡하고 첼리스트 정명화씨가 연주한 노래다.

정씨와 이 교수는 김 감독이 저작권료를 지불할 돈이 없다고 하자 흔쾌히 무상으로 사용하도록 허락했다. 영화 음악을 맡은 김준성씨는 완전 무보수로 3개월동안 작곡에 매달렸다.

이 영화는 1997년 기획에 들어가 2000년 어렵사리 완성됐지만 상영관을 찾는데만 2년 걸렸다.

다행히 일주아트하우스의 협찬으로 21∼24일 아트큐브에서 관객을 만날 수 있게 됐다.

김수경기자 sk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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