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곽경택감독 “유오성이 태극전사에 판정패”

  • 입력 2002년 7월 18일 17시 54분


《영화 ‘챔피언’은 ‘흥행의 링’에 오르기 전 할리우드 직배사들마저 떨게 하는 ‘핵 주먹’이었다. 지난해 ‘친구’(전국 관객 820만명)를 ‘한국 영화의 챔피언’ 자리에 등극시킨 곽경택 감독과 배우 유오성 콤비. 총 제작비 75억원. 미국 라스베이거스 현지 촬영과 연인원 3만여명이 넘는 엑스트라 동원. 그러나 결과는 지난달 28일 개봉이후 18일 현재 전국 165만명선으로 저조한 편. 최종 예상 관객 수는 전국 200만명선으로 손익분기점(250만명)을 밑돌 형편이다. 이쯤되면 ‘KO 패’는 아니지만 판정패다. 곽 감독이 두 기자를 상대로 ‘챔피언’에 대한 ‘방어전’을 벌였다. 이 ‘경기(인터뷰)’는 16일 오후부터 심야까지 세 곳을 옮겨가며 3라운드로 치러졌다.》

▼‘닥터K’ 관객 5명과 관람 악몽▼

영화 상세정보동영상
챔피언예고, 메이킹, 뮤비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곽 감독의 첫 발언이다. 그는 영화가 상영중이어서 ‘이미 끝났다’는 분위기를 풍겨서는 안된다는 점을 조건으로 내세웠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참패는 아니더라도 실패 아닌가.

“…. 여러 차원의 답변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는 만들고 싶은 영화를 만들었다. 흥행에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친구’의 큰 성공으로 여유를 부린 것 아닌가.

“아니다. 난 99년 ‘닥터 K’ 때 5명의 관객과 영화를 보는 끔찍한 경험을 했다. 실패해 본 감독은 흥행이 얼마나 무서운 지를 안다.”

-저예산 B급 영화로 기획된 ‘복수는 나의 것’에 송강호 신하균 배두나 등 스타가 출연하면서 ‘AB형’의 이상한 영화가 나왔다는 지적을 받았다. 곽 감독과 유오성도 비슷한 경우 아닌가.

“아니다. ‘챔피언’은 분명 스타가 있는 상업 영화다. 한국 영화 시장의 분위기에서 한번 대박이 났다고 마음대로 영화를 주무를 수 있는 감독은 없다.”

탐색전 격인 1라운드는 ‘아니다’는 답변의 연속이었다.

스태프와 자주 어울리는 영화 작업의 속성상 매일 소주 한병 반은 마신다는 곽 감독이 잔을 비우는 스피드는 무서웠다.

▼상업성보다 사실성 더 고려▼

-‘챔피언’은 한마디로 잽만 날리다 끝나는 느낌이다. 감정 이입 단계에서 자꾸 끊긴다.

“난 이 영화를 통해 김득구 선수와 관련된 또하나의 ‘신화’를 만들려 했던 게 아니다. 패배 속에서 피어나는 작은 승리를 말하고 싶었다. 돈만 생각했다면 더 과장되고 드라마틱해야 했다. 특히 하이라이트인 마지막 14라운드를 어떻게 담느냐를 놓고 많은 고민을 했다. 만약 과장됐다면 김 선수가 ‘나 그거 아니야. 이 ××야’라고 할 것 같았다. 이게 내 결론이다.”

-영화적 재미를 감안할 때 지나치게 절제한 것 아닌가.

“정확하게는 내가 너무 많이 알고 너무 많이 감동했다는 것이다. 나는 김선수와 부인 경미씨, 가족 등에 대해 너무 많이 알고 있었다. 김 선수의 삶을 왜곡해 남은 이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된다는 고민이 많았다.”

▼월드컵 열풍… 광고효과 없어▼

-곽 감독이 스스로 생각하는 ‘챔피언’의 패인은 뭔가.

“일단 관객 눈높이에서의 조언이 부족했다. 개봉 일정이 빡빡해 컴퓨터그래픽의 완성도도 떨어졌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김 선수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했다는 점이다. 할리우드 장르 영화에서는 시스템이 이같은 감독의 주관적인 문제점들을 보완해준다. 감독이 편집실에 들어가지도 못한다.”

-월드컵의 영향도 있나.

“한마디로 박지성과 유오성의 대결이었다. 2001년 히트 상품이 ‘친구’였다면 2002년은 월드컵이다. 월드컵이 끝난 뒤 광고비를 두배로 써도 효과가 보이지 않았다. 유오성의 ‘연기’가 박지성을 따라갈 수 없었다.”

-가장 애착이 가는 영화는.

“‘친구’도 ‘챔피언’도 아닌 ‘닥터 K’다. 임신중에 감기약을 잘 못 먹은 상태에서 태어난 ‘놈’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서 더 아쉽고 미련이 간다.”

-당신이 생각하는 영화는.

“‘Movie Is Magic’(영화는 마술이다). 영화는 내 머리 속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매력적인 수단이다.”

-곽 감독에게 ‘공격’할 기회를 주고 싶다.

“아직 내공이 부족한 걸 느꼈다. ‘챔피언’은 이유야 어쨌든 상업 영화로서 일반 관객이 요구하는 정서를 충분하게 담지 못했다. 하지만 ‘영화제용 영화로 만든 것 아니냐’는 기사에는 화도 나고 마음이 아팠다. 비평이 그러면 안된다. 감독의 아픔을 모르는 말이다. ”

다음 날 곽 감독에게서 전화가 왔다.

“집에는 잘 들어가셨나요. 속은 괜찮으십니까.”

어쩌면 곽 감독은 감독이기에 앞서 잊혀져가는 김득구 선수를 짝사랑해온 사내일지도 모른다.

김갑식기자 gskim@donga.com

강수진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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