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희의 TV읽기]KBS2 'TV동화 행복한 세상' 잔잔한 감동

  • 입력 2001년 8월 29일 18시 22분


TV의 숲 속에서 옹달샘 같은 프로그램을 찾았다. 후덥지근한 장마철에 듣는 깔끔한 피아노 선율, 작열하는 태양 아래 부서지는 파도소리 같은 프로그램이었다.

KBS 2TV가 매일 저녁 8시45분에 내보내는 ‘TV동화 행복한 세상’은 마음 한구석의 앙금을 봄눈처럼 녹여버리는 다사로운 이야기의 행렬로 이어진다. 매회 이야기 시간은 고작 3분 40초. 꿈결같이 순식간에 끝나버려 놓치기 일쑤지만, 그 순간에 빚어내는 감동이 영화 한편 못지 않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에서는 정말 동화 같은 일들이 벌어진다. 흑인 꼬마 앞에서 풍선을 풍선답게 하는 것은 색이 아니라 그 속에 든 것이라며 (아까운)검은 풍선들을 하릴없이 날려보내는 이상한 풍선장수, 대학생에게 꼬박 꼬박 장학금을 대주며 “인생은 무엇을 하느냐 보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것”이라고 훈계하는 구두병원 원장, 초라한 말라깽이 처녀를 암소 아홉 마리나 주고 신부로 맞은 신랑, 공장 일로 힘겨워하는 남편에게 “나는 당신이 자랑스러워요”라고 10년 동안 도시락 편지를 써보낸 예쁜 아내, 만년필의 주인을 찾아주려 동분서주하다 목숨을 잃은 독일청년…. 리얼리티로 치자면 어림없을 소재들이 리얼리티보다 더 진하게 가슴에 와 닿는 원인불명의 화학작용이 매일 ‘TV동화’에서 일어난다.

▼세상 낮은곳 에피소드 큰 울림▼

‘TV동화 행복한 세상’은 여러모로 기존의 TV와 부조화를 이룬다. 선명한 원색 속에서 중간색의 파스텔 톤으로 그려진 그림들이 그렇고, 유화처럼 진한 농담의 영상 속에서 수채화 같은 담백함으로 채색한 것이 그렇다. 또 매끄러운 움직임 대신 둔탁한 애니매이션을 쓴 것이 그렇고, 다채로운 목소리 대신 두어 명의 나레이터와 성우가 전부인, 간단한 소리 입히기가 그렇다.

이런 미니멀한 분위기는 주인공과 소재에서 극치를 이룬다. 평범한 중산층 보다 더 낮은 곳의 사람들, 그들의 자잘한 에피소드 하나가 이야기 거리를 이루기 때문이다.

▼포근한 목소리 3분40초 카타르시스▼

동화 속 단골 스타는 가난한 사람, 결손가정의 아이들, 장애인처럼 사회의 편견을 안고 사는 사람들이다. 주인공 중에는 거지도 있고, 행상 아줌마도 있다. 유난히 어린이들이 많이 나오고, 여러 형태의 어머니와 아버지가 나온다. 결국 사회를 이루는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에서부터 이 동화는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가장 낮은 곳에서부터 실타래를 푼다. 그렇게 솔솔 풀려 나온 이야기가 마침내 잉크 번지듯 TV를 물들이고, 온 세상을 파랗게 물들이는 것이다.

포근한 나레이터의 목소리에 이끌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보면 어느 순간 탁 하고 마음의 옹이가 풀리는 소리가 들린다. ‘TV동화 행복한 세상’이 주는 1초간 카타르시스의 순간이다. TV가 그렇게 하루에 단 몇 분이라도 사회의 낮은 곳을 비치고 착한 사람들을 추켜세워 ‘TV동화’처럼 마음을 씻어주는 거대한 카타르시스 제조기 역할을 해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이 또한 동화 같은 발상일까.

박성희<이화여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 shpark1@ewha.ac.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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