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태조왕건>,황후 '연화'의 비참한 최후

  • 입력 2001년 5월 2일 18시 51분


“왕장군. 인연이 없는 분에게 너무도 많은 짐을 드리고 가는 것 같습니다. 먼저 가옵니다, 장군. 내내 행복하소서.”

주말 밤마다 시청자들을 TV 앞으로 불러들이는 KBS1의 인기 대하사극 <태조 왕건>(밤 9시50분). 6일 방영분인 116회에서 황후 ‘연화’는 마침내 비참하게 최후를 맞는다.

궁예의 셋째 아들 ‘순백’을 출산한 후 며칠 안돼 열린 국문(鞠問·중죄인의 죄를 묻는 일)에서 궁예는 연화의 죄목을 열거한다.

“황후는 이 미륵의 아내로서 자질을 잃었어. 미륵의 아내는 하늘을 우러러 티끌 한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해. 이 미륵처럼 말이야. 순수를 잃으면 무엇이 남는가. 음탕하고 불결한 것만 남아. 이보다 더 큰 죄가 어디에 있는가.”

연화는 작심한 듯 말한다.

“폐하께서는 저 송악의 세달사라는 절에서 그렇게 승려로서 평생을 사셔야 할 분이셨사옵니다. 그런 분이 세상에 나와 거짓 미륵을 참칭하며 백성들을 속이고 한 나라의 황제가 되셨사옵니다…. 폐하께서 궁금해하시던 것을 말씀드리오리다. 신첩은 지금까지 폐하를 사모하지 않았사옵니다. 단 한순간도 폐하를 사모한 적이 없사옵니다.”

“행형하라! 그 더러운 것들을 모두 불로 태워버려라.”

연화는 어린 시절 왕건이 선물했던 목걸이를 죽는 순간까지 손에 꼭 쥔 채 숨을 거둔다. <삼국사기> <고려사> 등에 따르면 ‘강비(康妃)’의 최후는 끔찍하다. 강비가 음행을 저지르자 달군 쇠방망이로 음부를 찔러 죽였다고 기록돼 있다.

극 중에서는 국모의 체면을 고려해 사람들이 형 집행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연화 주위에 비단천으로 막을 두른다. 연화의 비명소리와 함께 푸른 연기가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 것으로 죽음은 처리된다.

<태조 왕건>의 작가 이환경씨는 “아내와 두 태자까지 죽일만큼 궁예의 광기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주는 순간이자, 앞으로 왕건이 궁예에게 마음을 돌리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장면인 만큼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온 가족이 함께 보는 TV 드라마라는 점을 고려해 우회적으로 처리했다”고 말했다.

이날 방영분에서 신광, 청광 등 두 태자도 군사들이 휘두른 법봉에 맞아 숨진다. 궁예의 아들 중에는 ‘순백’만이 살아남은 셈. 실제로 궁예에게는 ‘순백’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연화역을 맡았던 탤런트 김혜리는 지난주 녹화를 마친 뒤 현재 미국에 체류 중. 이환경 작가나 책임프로듀서인 안영동 부주간이 모두 “혜리가 정말 연기를 잘해줬다”고 칭찬할 만큼 그의 연기는 돋보였다.

황후역을 맡다보니 장신구가 많은 무거운 가발을 쓰고 있느라 누구보다 고생을 많이 했던 그는 “마지막 장면을 찍을 때는 솔직히 시원섭섭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태조 왕건>이 남자 연기자 위주의 드라마이긴 했지만 나름대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연기했어요. 이번에 ‘연화’가 시청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바람에 ‘사극 전문 배우’라는 고정 관념이 생길 것 같아 걱정이에요. 일단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난 다음 현대극 쪽에 출연하고 싶습니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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