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엔터 문화현장]'백 투 더 후삼국',<태조왕건>분장실

  • 입력 2001년 2월 27일 18시 38분


#1. 26일 낮 12시, KBS본관 남자분장실.

“어, 이 분도 수염 붙여드려야겠네. 여기는 남자들만 들어오는 곳인데.”

시커먼 남자들뿐인 분장실에 들어서자 누군가 농담을 던진다.

의자 10개만으로도 꽉 차는 좁은 방. 복도에서 피워대는 담배 연기에 후끈한 히터열기와 화장 거울의 조명 때문에 방안 공기는 후텁지근했다. ‘태조 왕건’의 스튜디오 녹화를 앞두고 4명의 분장사 손길이 바빴다.

“궁예, 종간, 아지태팀을 해주십시오.”

스탭 중 한사람이 분장실에 와서 주문했다.

100회 대본을 든 ‘궁예’(김영철)가 담당 분장사 앞에 와 앉았다. “이게 무엇이야? 내 손이 떨고 있지 않은가? 허허허. 저주로다.” 유난히 많은 대사가 잘 안외워지는 듯, 궁예는 분장하는 동안 계속 중얼댔다.

분장사가 손끝으로 궁예의 눈 밑과 뺨을 톡톡 두드리며 거무스레하게 칠하자 뺨이 ‘홀쭉’해졌고, 푸른색 파운데이션을 섞자 병세가 완연해졌다. 붉은 색 화운데이션을 묻힌 손가락이 눈 아래를 슬쩍 스치고 나니 어느새 눈가에는 ‘핏발’이 섰다.

#2. 오후 1시10분. ‘최수종’에서 ‘왕건’으로.

검은 모자를 눌러쓴 장난스런 표정의 최수종이 들어왔다. 밑화장을 끝낸 뒤 분장사는 ‘꼬챙이’ 빗 끝으로 화운데이션을 꾹꾹 찍어 얼굴의 점과 잡티를 가려준다. 10여분만에 화장이 끝나자 ‘왕건’이라고 쓰인 통에서 수염과 가발을 꺼낸다. ‘니스’(접착제)를 붓에 묻혀 코 밑에 바른다. 석유를 발라 떼야 할 만큼 접착력이 강하다. 콧수염과 수염을 붙인 뒤 핀셋으로 한올한올 살려 다듬는다. 라경균씨는 “이게 ‘보까시’라고 하는 건데, 이 분장 기술만큼은 우리가 세계적”이라고 말한다.

“왕건으로서 카리스마가 없다”는 말을 들었던 최수종은 곱상한 얼굴에 입술이 얇다. 또 말할 때 입이 약간 튀어나오는 느낌을 준다. 이 때문에 분장에서는 콧수염의 양끝을 약간 길게 해 입을 많이 감싸고, 턱수염으로 곱상한 얼굴선을 가려 강인한 느낌을 주는데 분장에 초점을 둔다.

분장실에서도 ‘왕후장상’과 ‘엑스트라’의 차이가 분명히 있다. 왕건, 견훤 등 주요 배역들의 가발은 진짜 머리카락으로 만든 것이지만 비중없는 배역들은 실(생사)로 만든 가발을 쓴다.

수염도 다르다. 주요 출연자의 콧수염은 인조수염에 실을 섞고 각각의 얼굴형을 맞춰, 얇은 망사위에 코바늘로 일일이 심은 ‘뜬수염’을 사용한다. 엑스트라는 실만으로 된 수염을 붙인다. 그나마도 염색이 잘못돼 주요 배역에는 사용할 수 없는 실로.

#3 한편, 여자분장실에서는….

남자와 달리 연기자들은 분장실에 외부인이 들어오는 것을 더 싫어한다. 화장 안한 맨얼굴을 보여주는 것이 부담스러운 모양.

미리 분장을 끝내고 복도를 어슬렁대는 남자 연기자와 달리 여자출연자들은 화장만 하고 머리손질은 최대한 미룬다. 틀어올린 머리가 너무 무겁기 때문. 많이 가벼워졌다고는 해도 요즘 ‘연화’의 머리는 장신구까지 하고 나면 4∼5㎏나 된다. 분장을 마친 ‘황후마마’는 머리 무게를 이기기 어려운 듯 분장실 소파에 목을 기대고 앉아 촬영을 기다리고 있다.

무게 못지않게 여자 연기자를 괴롭히는 것은 가려움. 왕건의 ‘부인들’은 간질간질한 머리를 ‘이고’ 다니다가 정 못참으면 뾰족한 ‘뒤꽃이’ 장신구로 서로 가려운 곳을 긁어주며 ‘화목함’을 과시한다.




★ <태조 왕건>의 분장팀

드라마 ‘태조 왕건 분장팀’은 모두 9명. 분장팀이 7명, 미용팀이 2명이다. 남자 출연자는 주로 분장팀에서, 여자는 미용팀에서 맡는다.

현대물의 경우 웬만한 배우들은 직접 코디네이터, 메이크업 담당을 두고 있어 분장팀에서 해줄 일이 별로 없지만, 사극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모두 분장팀의 손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가장 힘든 장르로 꼽힌다. 특히 엑스트라까지 분장의 손길을 필요로 해 일이 갑절은 많다.

<태조 왕건>의 남자 출연자 중 유일하게 앞 머리를 기른 ‘종간’(김갑수)의 머리만 미용팀에서 해주고 나머지는 분장팀이 담당한다. 여자 출연자는 화장은 직접 하고 머리만 미용팀이 해준다.

주요 출연자 한사람 당 분장 소요 시간은 30분정도. 엑스트라는 5분. 가장 어려운 견훤은 2시간 정도 걸린다. 이렇게 분장팀의 손을 거쳐 ‘후삼국시대’의 인물로 다시 태어나는 인물은 일주일에 약 1500명.

분장은 매 회 일관성 있어야 하므로 주요 연기자는 분장사들이 나눠서 전담하고 이들의 수염, 가발도 각자 챙긴다. 수요일부터 토요일까지는 출연자를 따라 내내 지방에서 지낸다.

‘태조 왕건’ 분장팀장 라경균씨(43)는 “촬영전에는 분장용품을 챙기느라, 촬영이 끝난 후에는 가발과 수염 등 뒷정리를 하기 때문에 남보다 일찍 나와 준비해야 하고 늦게까지 남아 있어야 한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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