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 교수의 EBS '동물의 세계' 화제

  • 입력 2000년 4월 17일 19시 08분


동물행동학의 권위자인 서울대 최재천교수(생물학과)의 ‘EBS 세상보기-동물의 세계’(화 밤8시) 강의가 철학가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 강의에 이어 화제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이기적 동물만이 代 잇는다▼

“모든 인간이 테레사 수녀 같았다면 인류는 멸종했을 것이다.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다면 종족을 보전할 수 없다. 번식의 제1원칙은 ‘자기애’(自己愛)다. 이기적인 동물만이 대를 이어 살아남을 수 있다.”

과학에 뜨악했던 일반인이라도 고개를 주억거릴 만한 명쾌한 설명이다. ‘동물행동학’이란 낯선 주제의 TV강좌가 방송 한달여만에 화제를 일으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뻐꾸기 까치 개미 쥐 등에 얽힌 ‘재미있는 동물나라’ 이야기도 시청자를 끌어당긴다. 게다가 구체적 사례에서 유도된 과학적 사실은 상식을 부숴버리는 짜릿한 지적 쾌감을 안겨준다.

얼마전 소개된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론’도 그중 하나다.

“개체는 죽지만 종족은 보존된다. 생명을 주관하는 것은 유전자(DNA)가 대물림되기 때문이다. 바꿔 말하면 생명체란 유전자를 보존하고 퍼뜨리는 수단이다. 닭은 달걀을 만들기 위한 ‘기계’인 것이다. 인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잘났다고 뽐내는 인간들이 단지 유전자의 ‘숙주’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섬뜩하지 않은가. 최교수는 “동물행태학은 겉으로는 동물의 행동양식을 연구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가장 진화된 동물인 인간을 이해하려는 학문”이라고 규정했다. 이 때문에 신경과학 인지과학 같은 첨단 분야의 기간 학문으로 꼽힌다는 말도 덧붙혔다.

“동물행동학은 인간과 동물의 본능적 행동이 유전자로 귀결된다고 본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암수가 교미한다. 까치는 매년 이맘때 똑같은 모양의 둥지를 만든다. 그 해답이 유전자 속에 들어있는 것이다. 사람이 날지 못하는 이유도 날개를 만드는 유전자가 없어서다.”

▼동물행동 연구 통해 인간 분석▼

그가 하버드대 시절인 1970년대 중반 사회생물학의 태두인 E O 윌슨에게 배웠음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인간 행동을 유전과 학습의 이분법으로 해석할 수 없다는 꼬리표를 달긴 했지만.

최교수는 8월까지 연장된 이번 TV강연에 많은 것을 담으려고 한다.

“특히 동물과 인간 세계까지 아우르는 폭넓은 시야를 보여주고 싶다. 그래서 동물간의 의사소통, 사회생활, 성생활 등 인간과 비교할 수 있는 토픽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갈 생각이다.”

그의 전공격인 코스타리카 아즈텍 개미도 한 예다.

“이 개미들은 먹고 살기 힘들어지면 다른 종끼리도 한 굴에 함께 번식한다. 숫자를 늘려서 주변의 군소 개미국가를 공격하기 위해서다. 다른 종족을 평정하면 그때야 내부 권력다툼을 벌인다. 툭하면 편가르기를 일삼는 우리 정치인은 개미만도 못하다.”

심혈을 기울인 대중강의지만 여기 거는 기대는 의외로 소박하다. 자기 전공분야에 관심을 끌겠다는 생각은 뒷전이다.

▼"과학의 대중화가 목표"▼

“가장 의미를 두는 것은 과학의 대중화다. 모두 과학적 마인드를 기른다면 지역감정 같은 불합리한 사회병폐 중에서 상당 부분이 해결되리라 낙관한다. 다른 하나는 친환경적인 심성을 기르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등골이 섬뜩하게 생긴 거미도 생태를 알면 귀엽게 보인다.”

하지만 아무리 미물일지라도 그 삶을 온전히 이해하는 과정은 지난하다고 귀뜸했다. 그가 희귀곤충인 조렙테라로 박사논문(90년)을 쓰기까지 19년, 아즈텍 개미로 첫 논문(87년)을 내는데 13년이 걸렸다.

<윤정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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