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50년대 미국에서 전성기를 누렸던 범죄 스릴러영화, 프랑스 비평가들이 하드보일드 탐정소설을 일컫는 자기나라말 ‘로망 누아르’에서 이름을 따온 이 영화장르가 20세기말 왜 권총을 물고 돌아왔을까.
“누아르는 영화작가가 다층적 인물묘사와 가슴을 찌르는 비정한 대사 등을 놓고 한껏 극작 기술을 발휘할 수 있는, 할리우드에 남은 유일한 장르이기 때문”이라고 뉴욕타임스는 분석한다. 미국에서 누아르의 유행은 노스탤지어를 뜻한다. 엄청난 물량공세로 만들어낸 스펙터클, 언제나 미국의 승리로 끝나는 권선징악의 구도로는 담아낼 수 없는 삶에 대한 통찰이 거기 있다.
누아르는 언제나 나름의 공식을 지닌다. 무대는 부패와 위험의 도시. 내면의 상처를 지닌 정의로운 영웅이 악을 무찌를 준비를 하고 있고 그 남자를 사건에 끌어들여 급기야 파멸로 몰아가는 팜 파탈(Femme Fatale·요부)이 늘씬한 허벅지를 드러낸 채 요염하게 서있다. 그리스신화에서 ‘판도라의 상자’를 열게하는 판도라처럼.
‘LA컨피덴셜’에서 고전적 누아르의 공식에서 유일하게 비켜나 있는 것이 팜 파탈, 킴 베이신저다. 누아르의 화려한 부활을 외치는 영화이면서도 여배우의 역할만은 기존 누아르와 판이한 모습을 그리고 있어 흥미롭다.
국회의원 경찰간부 고급공무원 등 고위층을 상대로 한 고급 매춘부 킴 베이신저는 요부나 악녀라기보다 그저 예쁘고 순수한 여자다.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것이 팜 파탈의 역할인데 그는 백치처럼 내막을 전혀 모르고 있다. 영화가 다 끝날 때까지 “저 여자가 뭘 알고 있겠거니”하고 믿은 관객을 철저히 배반한다.
전통적 팜 파탈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베이신저가 남자를 파멸시키기는커녕 ‘영광의 상처’를 입은 그 남자와 함께 시골로 떠난다는 데 있다. 예쁠 뿐만 아니라 착하다. 나이가 있으니(베이신저는 45세이다) 푸근하기까지 하다.
정통적 누아르에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무기로 남자의 질서에 도전할 만큼 지적이고 강력한 팜 파탈, 기존의 통념을 뒤엎는 텍스트로서의 여성 이미지와는 완전 딴판이다.
시네 페미니즘을 연구하는 평론가 김소영씨(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교수)는 “킴 베이신저는 안전핀을 단단히 붙인 수류탄처럼 모든 위험성을 제거한 여자”라고 분석했다. 누아르의 부활은 좋되 기존 팜 파탈은 더 이상 감당하기 싫은 현대 남성의 심리를 반영했다는 풀이다.
40, 50년대의 팜 파탈은 그 당시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불안과 두려움을 반영했다. 전쟁통에 여자들은 남자대신 일터로 나가면서 강인하고 독립적으로 돼버렸고 전쟁이 끝난 뒤 남자들은 여자를 가정으로 되돌려보내고 가부장 질서를 회복하느라 무진 애를 써야했다.
그러니 영화 속 팜 파탈은 남성지배 세계에 혼란과 불안정을 몰고왔다는 식으로 묘사될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죽음의 징벌을 받았다. 단두대에 보내지지 않은 팜 파탈은 81년 ‘보디 히트’ 등 손꼽을 정도에 불과하다.
그런데 90년대 말의 팜 파탈은 이와 정반대다. 한때 섹스 심벌로 여겨졌던 베이신저는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까지 바라보고 있다. 21세기 번영의 땅 미국이 원하는 여성상은 ‘위험하지 않은 여자’인 것일까.
〈김순덕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