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비디오「격동의 세계사…」,20C 위기-번영 조명

  • 입력 1997년 12월 17일 08시 16분


저무는 한 해와 함께 20세기가 노을에 물들고 있다. 지난 1년과 한 세기를 되새겨보면 가슴에 맺히는 교훈과 새날을 위한 성찰을 얻을 수 있다. 영국 BBC와 KBS가 제작, 최근 펴낸 다큐 비디오 「격동의 세계사 1백년」(각60분·1집 13편)에는 전쟁과 공황을 견뎌온 인류의 인내와 끝내 놓치지 않았던 낙관이 방대한 자료화면속에 녹아있다. 경제위기,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에 시달리는 우리들에게 특히 시사적인 대목은 「세계 대공황」 「전면전쟁」 「번영의 시대」편이다. 1차대전후 주가가 4년간 400%나 치솟는 태평성대를 누렸던 미국은 1929년10월24일 날벼락처럼 주가폭락을 맞았다. 당황한 투자가들은 월스트리트를 몰려다녔지만 곧이어 구직창구와 식량배급소 앞에 줄을 서야 했다. 집배원들은 똑같은 편지들을 집집마다 날랐다. 『지금 돈을 보내주시지 않으면 저희는 파산합니다』 불똥은 칠레의 구리광산까지 튀었다. 팔순의 전직 광부는 『미국 불황은 별세계 일인줄 알았는데 해고되자 실감이 났다』고 말했다. 당시 미국대통령 후버는 온갖 처방을 짜냈으나 실효를 못 거뒀고 실업자들은 판자촌을 「후버 마을」이라고 부르며 무능한 대통령을 조롱했다. 선거 3개월전 실업자 시위를 강제해산시키는 것으로 후버시대가 끝나고 유능한 새 대통령 루스벨트가 등장하자 세상이 바뀌기 시작했다. 새 지도자로부터 변화가 시작한 것은 유럽도 마찬가지. 스웨덴에서 새로 집권한 페르알빈 한슨 총리는 전차를 타고 출근하며 서류를 검토했다. 그러나 2차대전은 두 대륙의 운명을 바꿔놓았다. 전쟁의 불길이 휩쓸고 간 유럽은 폐허가 된 반면 군수기지 역할을 한 미국은 인류사상 최고의 번영을 누리기 시작했다. 유럽은 미국의 마셜계획으로 수천대의 트랙터를 지원받으면서도 『저들에게 저의가 있다』며 불신을 감추지 못했으나 지도자들은 미국공장에 찾아와 교훈을 얻어갔다. 「끊임없이 변화, 비효율성을 끝없이 제거해야 한다」는 것. 변화와 과학화는 전후 유럽의 유행이 됐으며 4백시간 걸리던 독일의 폴크스바겐 생산은 1백시간으로 줄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황혼기 노인들의 입을 빌려 『위기는 영원하지 않다. 오늘 유럽의 번영은 과거에 대한 뼈저린 반성의 결과였다』고 결론짓는다. 흑백의 자료화면, 과거에서 건너온 노랫가락들은 옛 시절에 대한 아련한 향수와 따스한 목소리의 깨달음을 전해준다. 역사는 반복되는가. 다시금 평온과 번영을 누리기 위해 우리에겐 어떤 성찰이 필요한 것일까. 02―780―0212 〈권기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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