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만에 고국무대 한대수…히트곡 「물좀주소」 등 공연

  • 입력 1997년 10월 24일 07시 49분


『서울에 왔습니다』

가수 한대수(49)의 첫마디다. 긴머리와 청바지, 맨발에 가죽 장화, 중년의 로커. 왜 서울에 왔다는 것을 내세울까. 70년대 후반 숨막혀 떠나야만 했던 그 서울을 아직 지우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는 노래하러 왔다. 고국에서 노래 무대를 갖기는 24년만이다. 짧지 않은 공백동안 그의 히트곡 「물 좀 주소」 「행복의 나라로」는 여전히 숨쉬고 있었다. 팬의 가슴속에, 그리고 노래방에.

이번에는 새 노래도 부를 참이다. 「노 릴리전」 「에이즈 송」. 「노 릴리전」은 인간이 만드는 어떤 체제도 인간을 행복하게 하지 못한다는 생각을 형상화한 「시」다. 20여년의 뉴욕 생활과 잠깐의 러시아 방문에서 떠올랐다.

「에이즈 송」의 주제는 마른 잎같이 바스러지는 에이즈 환자의 가족과 친구의 아픔. 어쩌면 도덕 불감증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가 에이즈 환자이지 않겠느냐고 반문한다.

『대중 음악은 마음의 장막을 걷어줍니다. 비틀스나 보브 딜런 등이 아니라면 서구 문화가 그리 풍요해지진 않았을 겁니다』

노래에 세계를 담으려는 「버릇」은 천성인듯. 자연히 한국 후배가수로 이야기가 옮겨갔다. 쉰 가까운 중년의 예리한 재치가 섬뜩하다. 『TV에서만큼은 행복의 나라』라는 것. 예쁜 가수들. 현란한 춤과 노래. 그런데 그게 현실인가.

한대수는 그러나 비난하지 않는다. 이제 배고프지 않으니 「축제」를 할 만하다. 다만 그 축제의 노래가 전부는 아닌데….

록으로 넘어가자 몸짓까지 더하며 말을 멈추지 않는다. 『록은 젊음의 에너지를 분출하는 음악이다. 록은 현실이고 자유다』

68년 데뷔한 한대수는 70년대 터널 속에서 빛줄기가 됐다. 그러나 앨범 「고무신」(75년)이 금지되면서 이전 노래도 묶였다. 입에 재갈이 물린 가수. 결국 해군에서 군생활을 마친 뒤 코리아 헤럴드에서 기자로 활약하던중 미국이 보였다.

하얀 날개를 펼치려고 갔다. 기자 일이 제법 괜찮았는데 늘 허전했다. 잊어버릴 수 없는, 그래도 가까이 할 수 없는 음악. 우울증도 생겼다.

그뒤 뉴욕에서 사진작가와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사진집도 냈고 시집도 한권. 「노 릴리전」은 북미 시인 콘테스트에서 입상한 작품이다.

내년 3월경 한국에서 새음반(6집)을 낸다. 이미 제의가 들어왔다. 중년 로커의 세계관과 결혼의 성공과 실패 등 자기 이야기도 담을 생각.

한대수의 무대는 「97 록 콘서트」의 하나다. 여기에는 전인권 강산에 「어어부」 「산울림」 「황신혜 밴드」 「부활」 「사랑과 평화」 「크래쉬」 「블랙 신드롬」 등 록스타들이 대거 참여한다. 29일 오후 7시반 잠실실내체육관. 02―782―9798

〈허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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