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영풍과 ‘황산취급 대행 계약’ 종료… “환경·안전 리스크 석포제련소와 선 긋기”

  • 동아경제
  • 입력 2024년 4월 15일 16시 01분


코멘트

원료 공동구매·공동영업 이어 영풍과 협업 축소
위험물질 관리 부담 가중·자체 물량 공간 확보
“지분 경쟁·소송 등 갈등 속 독자경영 강화” 분석
영풍 석포제련소 환경·안전 이슈 온산제련소로 ‘불똥’
“영풍 계열 동종업체라는 이유로 조사 등 조업 차질”
“영풍 자체 시설 마련 위한 유예기간 제공”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고려아연은 그동안 영풍과 협업 방식으로 진행해 온 ‘황산취급 대행 계약’을 더 이상 연장하기 않고 종료하기로 했다고 15일 밝혔다. 해당 계약은 오는 6월 30일 만료를 앞두고 있다. 최근 영풍과의 원료 공동구매·제품 공동영업을 종료한데 이어 관리가 까다로운 황산 분야 협력까지 중단하기로 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제련업을 넘어 전기차 배터리 소재와 친환경 에너지 분야로 사업 확장을 꾀하는 고려아연이 환경오염과 안전사고 등의 리스크가 있는 영풍 석포제련소와 선을 긋고 사업적 결별을 본격화하는 수순으로 보고 있다. 고려아연계열을 경영하는 최윤범 회장 측과 영풍그룹 장형진 고문 측을 중심으로 최근까지 이어진 갈등도 이번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영풍그룹은 지난 1949년 고(故) 장병희, 최기호 창업주가 공동으로 설립한 이래 지배회사인 영풍그룹과 전자계열을 장씨 일가가, 고려아연계열은 최씨 일가가 경영하면서 동업관계를 이어왔다. 창업주 3세 최 회장 측과 장씨 일가 2세 장 고문 측 갈등은 2년여 전 수면 위로 드러났다. 최 회장 측이 신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장 고문 측 간섭과 반대에 부딪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양측을 중심으로 고려아연 지분 확보 경쟁이 이어졌고 지난달 정기주주총회에서는 배당과 정관 변경 안건을 두고 표 대결까지 벌어졌다.

주총 이후에는 영풍그룹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신주발행무효 소송을 제기한 사실이 전해지기도 했다. 작년 고려아연은 신규 사업 일환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을 대상으로 하는 제3자배정 유상증자를 단행한 바 있다. 해당 유상증자는 최 회장 측 지분(우호지분 포함)이 장 고문 측 지분을 넘어선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지분 경쟁에 이어 주총 표 대결과 소송까지 이어지면서 약 75년간 유지된 동업관계는 사실상 파국을 맞았다는 분석이다.

고려아연은 본사 이전까지 추진하고 있다. 44년 동안 본사로 사용한 서울 강남구 영풍빌딩에서 벗어나 종로구 그랑서울로 이전하기로 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영풍그룹과 고려아연의 관계가 틀어졌지만 양측 지분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실제 계열분리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것으로 보고 있다. 대신 미래 전략 ‘트로이카드라이브’를 내걸고 성장 동력 확보를 꾀하는 고려아연이 다른 간섭 없는 ‘경영분리’를 추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해석하고 있다.
영풍 정기주주총회가 열린 지난달 20일 서울 논현동 영풍 본사 별관 앞에서 영풍석포제련소의 환경오염과 안전사고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영풍 정기주주총회가 열린 지난달 20일 서울 논현동 영풍 본사 별관 앞에서 영풍석포제련소의 환경오염과 안전사고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사업적으로는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와 영풍 석포제련소가 거리를 두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이 나온다. 영풍 석포제련소는 수년 동안 직원이 다치거나 사망하는 안전사고가 발생했고 낙동강 카드뮴 오염 등 환경 이슈에서도 자유롭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1997년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첫 사망사고가 발생했는데 공교롭게도 황산 탱크로리가 전복되면서 1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이후 지난달까지 20년 넘는 기간 동안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사건·사고로 총 14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는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운영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진다. 석포제련소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영풍 계열 동종사업 업체라는 이유로 관련 이슈에 대한 각종 조사와 점검을 받게 돼 조업이 차질을 빚게 된다고 한다. 영풍과의 협업 축소를 단순히 두 집안 경영권 다툼의 결과로만 볼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고려아연은 금속업계 최초로 RE100(사용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글로벌 캠페인)에 가입하고 별도 지속가능경영본부를 설치해 운영하는 등 ESG(환경·사회·지배구조)경영을 적극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내부적으로 법보다 높은 기준의 사내 환경규정을 제정해 운영 중이고 폐기물 적법처리시스템을 통해 폐기물 관리에도 만전을 기하고 있다.

황산취급 업무와 관련해 고려아연은 현재 온산제련소에서 20기의 황산탱크를 운영 중이다.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받는 40만 톤(작년 기준)을 포함해 연간 160만 톤의 황산을 처리한다. 황산은 아연을 제련하는 과정에서 생성되는 부산물로 독성이 강한 유해화학물질이라고 한다. 사고 예방을 위해 엄격한 관리와 함께 화학물질관리법에 따른 여러 의무와 부담 등을 감당해야 하는 물질이다. 고려아연 측은 영풍과 협업 시 자체적으로 배출한 황산 외에 위험물질을 추가적으로 외부에서 반입해야 하기 때문에 경제적, 사회적 부담이 가중된다고 강조했다. 안전하게 산업용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비용도 상당히 발생한다고 전했다. 이밖에 황산관리 시설 노후화에 따른 일부 시설 폐기, 시설개선을 위한 추가 투자 필요성, 자체 황산 생산 증가로 제련소 부지 내 공간 부족 등의 이유도 들었다. 특히 오는 2026년에는 자회사 캠코의 ‘올인원 니켈제련소’ 가동 본격화로 연간 18만5000톤 규모 황산이 추가 생산될 예정이라고 한다.

고려아연 측은 현재 영풍 석포제련소는 조업차질과 생산량 감소 등의 영향으로 실제 고려아연에 위탁하는 연간 황산 물량이 19만 톤 수준이라고 밝혔다. 해당 수준 물량은 육로를 통해 더 가까운 동해항(약 65km)으로 옮겨 처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전했다. 지금까지는 온산선 철도를 통해 300km 거리에 있는 온산제련소로 황산을 수송해 왔다고 설명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영풍그룹과 지속해 온 협력관계를 감안해 영풍 측에 사전에 통지하고 동해항을 통해 처리하는 방식 외에 영풍 측이 자체적으로 황산 관리시설을 마련할 수 있도록 충분한 유예기간을 부여하는 등 관련 사안에 대한 상호 협의를 진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민범 동아닷컴 기자 mb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