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헬스산업 이끌 ‘의사과학자’… 국가가 나서서 지원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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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환 포스텍 총장이 만난 어거스틴 최 코넬대 의대 학장

김무환 포스텍 총장과 어거스틴 최 미국 코넬대 의대 학장이 2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만나 한국의 의사과학자 양성에 대해 논의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김무환 포스텍 총장과 어거스틴 최 미국 코넬대 의대 학장이 2일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만나 한국의 의사과학자 양성에 대해 논의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의사과학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의학과 공학이 융합되면서 새로운 혁신들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전례 없는 속도로 개발된 mRNA(메신저 리보핵산) 백신이다. 의사과학자들의 장기간 연구가 뒷받침됐기에 mRNA 백신이 1년 만에 나올 수 있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내 대표적 연구중심대학인 포스텍도 의과학대학원 설립 등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김무환 포스텍 총장은 2일 오후 서울 중구 신라호텔에서 어거스틴 최 미국 코넬대 의대 학장과 의사과학자 양성과 관련해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눴다. 최 학장은 한인 재미교포 최초로 미국 명문 사립대를 일컫는 아이비리그 의대 학장에 오른 인물이다. 본지가 김 총장과 최 학장의 대담을 단독 취재했다.
○ 바이오헬스 시장 잡으려면 ‘의사과학자’ 양성 필수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을 거치면서 글로벌 바이오헬스 시장은 한국의 3대 주력 산업인 반도체, 자동차, 조선의 서너 배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은 이런 시장에서 글로벌 점유율이 1%에도 미치지 못한다(2020년 기준 0.8%).

김 총장은 “바이오헬스 산업은 기술집약 산업으로 연구개발(R&D) 성패가 곧 시장 우위로 연결된다”면서 “또 예측의학, 맞춤형 신약 개발 등이 모두 융합연구임을 감안하면 의사과학자의 활약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의사과학자는 기초의학이나 과학을 연구하기 위해 충분한 훈련을 받은 의사를 말한다. 쉽게 말하면 의사자격증(MD)과 박사학위(PhD)를 모두 보유한 이들이다. 최 학장은 의사과학자를 크게 기초의학에 몰두하는 유형과 의·공학적 융합연구를 수행하는 유형으로 나눴다. 김 총장이 포스텍에서 키워내겠다는 의사과학자는 후자의 형태다. 과학기술특성화대학인 포스텍 안에 의학전문대학원 설립을 추진하는 것도 이런 의중을 담아낸 것이다.

최 학장은 “공학과 의학을 합치려는 시도들이 전 세계에서 꿈틀거리는 시점에 포스텍이 의전원을 설립해 공학과 의학 융합을 보여준다면 글로벌 대학들의 롤 모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1960년대 이미 정부 주도로 의사과학자 양성한 미국
미국은 정부 주도로 1960년대부터 의사과학자 양성 프로그램을 운영해 오고 있다. 매년 1조 원가량을 투입해 의대생과 전공의 등에게 맞춤형 지원을 하고 있다. 최 학장은 “미국 내 154개 의대가 있다”며 “MD 학위를 PhD나 로스쿨, 경영학석사(MBA) 등과 연계해 취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의사과학자 양성을 위한 움직임이 최근 더 거세지고 있다. 미국 어배나섐페인 일리노이대는 2018년 공학을 기반으로 한 세계 최초의 의대를 표방하며 ‘칼 일리노이의대’를 설립했다. 수학, 컴퓨터 프로그래밍, 데이터 사이언스 등의 전공자들을 선발했다. 칼 일리노이의대 학생들의 약 80%가 공학 전공자다.

최 학장이 이끄는 코넬대 의대도 마찬가지다. 코넬대 의대에서 양성 중인 의사과학자만 지난해 기준 451명에 이른다. 최 학장은 “3년간의 펠로십 기간 중에 약 18개월을 연구에만 몰두하도록 지원하며 초년 교수진들에게도 연구시간을 보장해준다”고 소개했다.
○ “과기특성화대 의전원 설립, 기존 꼬인 문제들 풀어줄 것”
국내에서는 매년 약 3000명의 의사가 배출된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의사과학자의 길을 걷는 이는 연간 50명 안팎에 그친다. 약 10만 명의 국내 의사 중 의사과학자는 약 700명 수준으로 추정된다. 연구 인력 부족은 부진한 연구 성과로 이어지고, 영향력이 적으니 지원자도 끊기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에도 대학병원 안에 자신의 실험실을 갖추고 연구 활동을 이어가는 의사과학자들이 있지만 대다수가 환자를 진료하는 임상에 70∼80%의 시간을 할애하는 실정이다.

김 총장은 과기특성화대에 의전원을 설립하면 이런 문제를 풀어줄 것이라 기대했다. 김 총장은 “연구를 하고 싶은 의사들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길을 하나 더 열어주는 것”이라고 했다. 최 학장도 “미국 국립보건원(NIH)에 따르면 미국에서도 MD와 PhD 학위를 함께 가진 인재들의 경우 약 83%가 연구를 이어가는 것으로 집계된다”며 “최근의 노벨상 수상자나 코로나19 백신 개발자 모두 의사과학자”라고 말했다. 김 총장은 “결국 국가가 나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라며 “의사과학자 양성을 국가적 성장 전략안으로 삼고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재원 동아사이언스 기자 jawon121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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