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기자본 위협하는데 상법개정?… 재계 “3월 국회가 두렵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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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처리 촉각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에 8조3000억 원에 이르는 배당과 이사 선임안을 요구하며 정기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을 예고하자 재계가 술렁이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들의 공격이 거세지고 있지만 국회에는 기존 대주주의 손발을 더 묶을 상법 개정안,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이 올라가 있기 때문이다. 재계에선 “3월에 임시국회가 열릴까봐 오히려 무섭다”는 목소리마저 나온다.

27일 재계에 따르면 기업들이 가장 우려하는 제도는 감사위원 분리선임 제도다. 현재 기업들은 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임한 뒤, 선임된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회 위원을 뽑는다. 감사위원 분리선임 제도는 처음부터 감사위원을 이사들과 분리해 선임하도록 돼 있다. 현재 이 제도는 상법 개정안에 포함돼 있다.

주요 기업들이 감사위원을 따로 뽑는 데 반발하는 이유는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규정 때문이다. 현재도 감사위원을 뽑을 때 대주주 의결권이 3%로 제한되지만 이미 뽑힌 이사들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임하기 때문에 그간 소액주주들 사이에서는 의결권 제한이 의미가 없다는 비판이 나왔다. 감사위원을 분리해 뽑으면 처음부터 대주주는 3%의 의결권만 가지게 된다.

현대자동차의 주요 주주는 현대모비스(21.4%), 정몽구 회장(5.3%), 정의선 수석부회장(2.4%) 등이다. 이들 지분을 합치면 29.1%의 의결권을 행사해 이사를 선임한 뒤 그중에서 감사위원을 뽑으면 된다. 하지만 감사위원 분리선임 제도가 적용되면 1∼3대 주주 의결권을 합쳐도 8.4%로 떨어지게 된다. 현대차 지분을 3% 보유한 엘리엇이 2, 3개 헤지펀드와 손을 잡으면 대주주를 뛰어넘는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이 때문에 재계는 감사위원의 독립성 확보라는 취지가 악용돼 자칫 이사회가 해외 헤지펀드들의 놀이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사 및 감사는 회사의 모든 기업 활동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자리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지난해 말 국회에 제출한 상법 개정안 반대 의견서에 “감사위원은 이사 지위를 겸하고 있다. 이사를 선임할 때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주주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아직까지 외국에서도 입법된 사례가 없다”고 주장했다.

집중투표제, 다중대표소송제 등도 엘리엇 같은 행동주의 펀드의 공세에 취약해질 수 있다는 게 재계의 주장이다. 현재는 기업이 정관을 통해 집중투표제를 채택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상법 개정안은 이를 의무화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단순 투표제에서는 이사 후보가 3명 있다면 한 명씩 순차적으로 찬반 투표를 하지만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주주들에게 ‘의결권×후보 수’만큼 표를 준 뒤, 후보 3명을 두고 한꺼번에 투표를 한다. 소액주주나 헤지펀드가 자신의 의결권을 한 후보에게 몰아주면 특정 인사를 기업 이사회에 손쉽게 보낼 수 있게 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주요 경제단체들은 지난해 말 국회에 의견서를 보내 상법 개정안의 문제점을 여러 차례 지적해왔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도 최근 경총 행사에 참석해 “집중투표제 의무화 등의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외국 투기자본에 경영권을 다 내주게 되는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여당이 상법과 전속고발권을 폐지하는 내용 등이 담긴 공정거래법 개정안 등에 대해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 지정을 추진하고 있어 3월 임시국회에서 통과될 가능성도 작지 않은 상황이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상법 개정안#3월 임시국회#투기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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