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는 큰 방향만 정하고… 세세한 것은 조직원에 맡겨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31일 03시 00분


코멘트

조직문화의 핵심 떠오른 ‘무위의 리더십’

구글 본사 사옥에 들어서면 10m가 넘는 긴 화이트보드가 눈길을 끈다. 마스터플랜이라고 불리는 이 화이트보드에는 사훈이나 전달사항이 적혀 있지 않다. 그 대신 온갖 낙서가 빼곡하게 적혀 있다. 제품에 관한 아이디어나 회사에 대한 자신의 코멘트, 어젯밤 동료들과 맥주를 마시며 나눴던 대화 등 사적인 이야기를 자유롭게 적을 수 있는 공간이 화이트보드다. 또 구글에는 정해진 근무 시간이나 형태가 없다. 근무 시간 중 회사 내에 마련된 당구장에서 당구를 칠 수도 있고, 미술관에서 그림을 관람할 수 있으며, 카페테리아나 마사지숍, 피트니스센터에서 휴식을 취하거나 신체를 단련할 수도 있다. 구글의 리더들은 이러한 방임형 조직문화를 권장하고 육성한다. 직원들에게 조직의 목표나 성과를 구체적으로 제시하지도 않는다. 비전만 제시한 후 그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방법은 직원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내버려 둔다. 방임에 가까운 리더십 덕분에 직원들은 틀이나 규격, 권위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내고, 동료들과 토론하고, 그 결과를 집약해서 회사에 건의한다. 구글은 이를 바탕으로 혁신적인 서비스를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창사 20년 만에 연매출 1000억 달러를 돌파(2017년 기준)할 수 있었던 것은 무위의 리더십과 자유로운 조직문화 덕분이다.

4차 산업혁명은 탈규격, 탈규제, 탈이념, 탈권위의 포(four) 탈혁명이다. 정해진 틀이나 매뉴얼, 전통적인 생각과 리더의 권위에 의존하는 조직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살아남기 힘들다. 구글의 조직문화는 그래서 눈여겨볼 만하다.

‘장자’에는 무위의 리더십을 강조하는 대목이 여러 군데 나온다. ‘대종사’편에 나오는 다음 구절이 대표적이다. “진인은 무위를 일삼아 노닐고, 세상에서 통용되는 생각의 틀이나 규격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떠돌아다닌다. 眞人(진인) 逍遙乎無爲之業(소요호무위지업) 茫然彷徨乎塵垢之外(망연방황호진구지외).”

‘응제왕’편에서 장자는 무위의 리더십이 갖춰야 할 덕목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이름을 얻으려고 일을 억지로 꾸미지 않으며(無爲名尸 無爲謀府), 일의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떠넘기거나 자신의 생각을 내세우지 않는다(無爲事任 無爲知主).” 특히 장자는 다음 우화를 통해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리더십이 초래할 수 있는 해악을 경고한다. 남해의 임금을 숙(숙)이라 하고, 북해의 임금을 홀(忽)이라 하며, 중앙의 임금을 혼돈(混沌)이라 한다. 숙과 홀이 혼돈의 땅에서 만났다. 혼돈은 매우 융숭하게 그들을 대접했다. 이에 숙과 홀은 혼돈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그 방법을 의논했다. “사람은 누구나 눈, 귀, 코, 입의 일곱 구멍이 있어서 그것으로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혼돈에게만 이 구멍들이 없다. 그러니 우리가 선물을 주는 셈 치고 혼돈에게 구멍을 뚫어주자.” 숙과 홀은 의논을 마친 후 매일 하나씩 구멍을 뚫어줬는데 7일이 지나자 혼돈은 그만 죽고 말았다. 혼돈의 원래 상태는 모든 사물이 확실히 구별되지 않는, 무위의 중립 상태다. 여기에 구멍을 7개나 뚫는 인위적 조치를 취했더니 혼돈은 죽어 버렸다.

조직의 위기를 돌파하는 힘과 비전의 공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힘, 조직에 대한 충성심과 책임의식은 유위의 리더십이 아니라 무위의 리더십에서 나온다. 리더가 시시콜콜 업무에 간섭하거나 개입하면 구성원들이 멀미를 느끼고 스트레스를 받아 일을 제대로 할 수 없다. 강력한 유위의 리더십이 작동하면 직원들은 윗선의 눈치 보기에 바빠지고 조직은 보신주의에 빠져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 유위한 지도자는 헤겔이 말하는 주인과 노예의 역설에 빠진다. 주인(통치자, 상사)이 노예(백성, 직원)를 더 강하게 억압하고, 지배하고, 통제할수록 노예는 더 약하고, 우유부단하고, 평범해진다. 유위의 리더십을 발휘하는 주인은 직원의 상사가 아니라 노예의 상사가 된다. 이념과 권위를 탈피하고 창의와 자율을 존중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의 리더십은 큰 방향만 정해주고 세세한 것은 위임하는 무위의 리더십이어야 한다. 그래야 조직원의 책임감과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다.

박영규 인문학자 chamnet21@hanmail.net

정리=최한나 기자 han@donga.com
#리더는 큰 방향#무위의 리더십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