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부담에 세제혜택 ‘찔끔’… “국내복귀 고려” 0.4%뿐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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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턴 못하는 기업들]U턴지원법 4년간 42곳만 돌아와

#1. 지난해 초 기업인 A 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중국 산둥성 웨이하이의 낚시용품 공장을 충청 지역으로 옮길 수 있는지 알아봤다. 하지만 A 씨는 지방자치단체와의 논의 끝에 공장 이전을 포기하고 중국에 머물기로 했다. 한국의 높은 인건비가 부담스러웠다. 한국보다 중국 경제의 회복 속도가 더 빠를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A 씨는 한국에서 설비 등에 약 50억 원을 투자하고 20∼30명의 직원을 고용할 예정이었다.

#2.
다른 기업인 B 씨는 중국 광둥성에 있는 섬유 공장을 처분하고 고부가가치 특수섬유 공장을 짓고자 수도권 일대를 물색했다. 하지만 수도권으로의 유턴은 세제 혜택을 거의 받을 수 없고 규제도 많았다. B 씨는 결국 국내 복귀를 포기했다. 지자체 관계자는 “이 정도 인센티브로 해외에 진출한 국내 기업을 데려올 수 있겠느냐는 B 씨의 말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은 해외에 진출한 기업을 국내로 복귀시켜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유턴지원법’을 제정한 거의 유일한 국가다. 그만큼 정부가 기업 유턴의 중요성을 잘 알고는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한국으로의 복귀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법인세 인상과 규제 등으로 기업 하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는 것이다. 올해부터 최저임금 인상이 본격화하면서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게 된 데다 유턴을 해도 수도권으로는 갈 수 없도록 제한하는 등 걸림돌이 많아 앞으로 유턴 기업이 늘어날 가능성도 없다고 기업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 기업 유인 못하는 ‘반쪽짜리’ 유턴 지원

유턴지원법은 △유턴 후 5년 동안 법인세 및 소득세 면제, 이후 2년 동안 50% 감면 △기업당 최대 60억 원 투자보조금 지원 △고용보조금 1년간 1명에게 최대 720만 원 지원(100명 한도) △토지 매입 비용 5억 원 한도 내 지원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정부가 해외 사업이 고만고만한 기업이라면 괜히 밖에서 고생하지 말고 국내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한 셈이다. 이 정도의 지원책이면 사업이 잘되는 기업도 한국에의 공장 증설을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하지만 돈과 땅을 망라하는 지원법을 만들고도 유턴 효과를 보지 못한 것은 유턴지원법이 기업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선 세금 감면이나 고용보조금 제공 기간이 너무 짧다는 것이다. 또 기업들이 선호하는 수도권은 대부분 과밀억제권역으로 지정돼 있어 유턴법상의 지원을 받을 수도 없다. 기업들은 수요가 많고 고용이 쉬운 수도권에 가려고 하는데 지방 산업단지로 가라고 하니 엇박자가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국이 기업을 경영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지 못한 것도 문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캐나다 연구소 ‘프레이저 인스티튜트’의 규제 자유도 순위를 분석해 지난해 한국의 기업 규제가 조사 대상 159개국 중 75위에 머물렀다고 밝혔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27개국 중에는 23위다. 더욱이 한국은 2020년 최저임금 1만 원으로 인상을 앞두고 있으며 비정규직 축소 등 노동시장 유연성도 줄어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기업들이 한국 복귀를 꺼리게 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상반기(1∼6월) 산업통상자원부가 해외에 진출한 제조업체 1299곳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으로 유턴할 의사가 있는 기업이 0.4%(5곳)에 불과했다. 중소기업인 C 씨는 “정권에 따라 산업 정책이나 세금 정책이 시도 때도 없이 바뀌니 10년을 내다보고 안정적으로 계획을 세우거나 투자를 집행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 나간 기업 10%만 복귀해도 29만 개 일자리

한국수출입은행에 따르면 2016년 기준 국내 제조업체가 해외에 세운 법인은 4060개이고 이들이 채용한 인원은 현지인과 한국인을 더해 194만1256명이다. 지난해 3월 한경연은 보고서를 통해 “해외 제조업 공장의 10%만 국내로 돌아오면 29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해외 진출 기업이 대부분 저부가가치 제조업이기 때문에 정부가 굳이 유턴에 공을 들일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제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을 간과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종명 대한상공회의소 경제정책팀장은 “선진국들은 ‘리쇼어링’(제조업의 생산 설비를 국내로 옮기는 것)을 통해 제조업 기반을 세우고 융·복합 산업을 육성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는 최근 제조업체 유치를 통해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고 있다.

기업들은 산업부 설문에서 유턴을 위해 세제 감면 혜택을 확대하거나 입지 및 설비 보조금을 추가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정부는 인센티브 확대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유턴 기업에 필요 이상의 혜택을 준다는 국내 기업들의 불만도 있다”고 전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해 전문가들은 유턴지원법에만 집착하지 말고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동근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미국은 항구적으로 사업하고 싶다는 느낌이 들게끔 바뀌고 있다”며 “기업 유턴을 늘리려면 당국자들이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이 무엇인지부터 근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건혁 gun@donga.com / 세종=최혜령 기자
#u턴#최저임금#세제혜택#국내복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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