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째 ‘라인’경쟁… 골병든 우리은행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1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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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질적 지배구조 쇄신” 목소리

금융권의 채용비리에 대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면서 리더십 공백에 빠진 우리은행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1999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의 합병 이후 계파 갈등이 끊이지 않고 정치권 및 정부의 낙하산 인사가 되풀이되면서 오랫동안 곪아온 상처가 터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우리은행의 위기 상황이 단순히 최근 채용비리 의혹에서 비롯된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 내부 갈등-정권 인사개입 되풀이

금융권 안팎에서는 우리은행의 고질적인 내부 갈등이 은행을 위기에 몰아넣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외환위기 이후 상업은행과 한일은행이 대등하게 합병하면서 두 은행 출신 사이의 알력 다툼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은행은 2008년부터 한일은행과 상업은행 출신이 번갈아 행장을 맡고 임원도 양쪽 출신을 거의 동수(同數)로 구성하는 등 ‘채널 갈등’을 줄이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하지만 합병한 지 거의 20년이 다 되도록 양측 출신 간 화학적 결합이 성공하지 못했다.

특히 최근에는 이순우 이광구 등 상업은행 출신이 연달아 은행장을 맡고, 한일은행 출신이 맡을 것으로 기대됐던 수석부행장 자리마저 없애 버리자 한일 측 인사들의 불만이 커졌다. 한일은행 출신 직원이 채용비리의 증거 문건을 국회 측에 넘겼다는 추측이 나오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우리은행 전직 임원 A 씨는 “이 행장의 경쟁자 ‘라인’으로 분류된 한 직원은 인사 보복을 받아 한직을 전전하다 회사를 떠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다른 전직 임원 B 씨는 “두 은행이 합병한 뒤 입사한 직원들이 이미 80%를 차지하고 있지만, 임원급들을 중심으로 제 식구 챙기기가 만연하다”고 말했다.

오랜 기간 정부가 우리은행의 지분을 보유하면서 외풍에 취약했던 것도 내부의 권력 투쟁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1999년 통합 한빛은행이 출범한 이후 2008년까지 역대 은행장은 김진만 이덕훈 황영기 박해춘 전 행장 등 외부 출신들이 독차지했다. 정권에 따라 누가 권력의 줄을 잡고 행장 자리를 차지할지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에서 직원들이 은행의 본업에 집중하기보다는 줄대기에 신경 쓰는 문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정권에 따라 행장이 바뀌다 보니 내부 승계 프로그램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이다. 2008년 이후 이순우 전 행장까지는 수석부행장이 차기 행장에 오르는 방식이 안착되는 듯했다. 하지만 2014년에는 기존 예측과 달리 이광구 행장이 선임되면서 ‘서금회’(서강대 금융인 모임)라서 박근혜 정권의 지지를 받았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 은행 안팎에서 쇄신 요구 봇물

사태가 이 지경에까지 이르자 안팎에서 쇄신 요구가 거세지고 있다. 최근 사퇴 의사를 밝힌 이광구 행장으로부터 업무를 넘겨받은 손태승 글로벌부문장은 임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신뢰받는 은행이 되기 위해 인사 시스템과 조직 문화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겠다”며 “향후 공청회 등을 통해 영업 현장 직원들과 소통하겠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우선 경영 승계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신한금융지주는 2011년 신한사태 이후 주요 계열사의 최고경영자(CEO)를 차기 회장 후보로 정해 관리한다. 임원 인사를 할 때 ‘한일·상업은행 출신을 동수로 맞춘다’는 관행을 깨고 능력 중심의 인사를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북부지검은 7일 오전 서울 중구 우리은행 본점의 행장 집무실과 인사부 등을 압수수색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신입 공채에서 금융감독원, 국가정보원, 거래처 등의 청탁을 받아 16명을 특혜 채용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강유현 기자 yhkang@donga.com
#우리은행#금융#채용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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