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용 물고기, 식용처럼 검역… 비용-시간지체로 연구 포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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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산업기업 절반 “규제 탓 사업 차질”… 상의, 700여곳 설문

“미국, 일본에서는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연구용 물고기 제브라피시(zebrafish)를 한국 연구실에서는 구경조차 하기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1일 전남대 의학전문대학원 최석용 교수는 본보와 통화에서 ‘제브라피시’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이나 어렵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길이 3cm 안팎의 제브라피시는 유전자나 세포조직이 인체와 유사해 약물 유효성이나 안전성을 효과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담수어다. 각종 암 연구부터 알코올 중독 등 신경계 연구까지 가능해 연구 활용도가 매우 높은 물고기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관련 연구보다 ‘물고기 구하기’가 더 스트레스다. 실험용 제브라피시를 수입하려면 식용수산물과 동일한 검역 절차를 거쳐야 하는 탓이다. 연구를 위해 10마리만 들여오려 해도 검역 비용에만 수백만 원이 들고, 일주일 넘는 검역 기간 사이 폐사해 버리기 일쑤다. 국내 연구는 사실상 불가능한 상태인 것이다. 최 교수는 “해외 연구소들은 연구를 위해 송금료만 서로 부담하면서 자유롭게 주고받는 제브라피시지만 유독 한국에서만 불필요한 규제 탓에 공급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 “불필요한 규제 때문에 힘들다”

“1년 사이 불필요한 정부 규제 탓에 사업 추진에 차질을 빚은 경험이 있는가.”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신산업 분야 700여 기업에 물은 결과 2곳 중 1곳(47.5%)이 “그렇다”고 답했다. 모두 신재생에너지, 바이오·헬스, 핀테크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신성장산업군으로 주목받는 기업들이다.

서울 소재 유전자분석기업 A사 역시 규제 탓에 어려움을 겪은 기업 중 한 곳이다. A사는 유전자 기반 개인 맞춤 건강관리 서비스를 준비해 왔다. 운동 후 회복 능력 등과 유전자 사이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하지만 A사는 “운동 후 회복력은 질병 관련 항목이 아니므로 유전자 검사 서비스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유전자 검사 서비스가 ‘탈모·피부노화’ 등의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한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 때문이다. A사 관계자는 “포지티브 방식의 규제 탓에 글로벌 경쟁력이 충분한 유전자 분석 기술을 갖고 있음에도 아예 새로운 서비스나 사업적 시도가 막혀버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 “정부가 로드맵 만드는 시대는 지났다”

대한상의 ‘국내 신산업 규제애로 실태조사’ 결과 설문 응답한 기업(복수 응답) 중 규제 때문에 신제품 출시 등 시기가 늦어졌다고 답한 곳은 53.1%에 달했다. 아예 사업을 중단하거나 잠정 보류한 곳도 45.5%였다. 불필요한 비용이 발생(31.7%)했거나 사업 구상 단계에서부터 어려움을 인식해 아예 포기했다는 곳(22.8%)도 있었다. 가장 어려움을 겪는 곳은 핀테크 관련 사업(70.5%)으로 나타났다.

대한상의는 1일 △원칙 금지, 예외적 허용 방식의 포지티브 규제 △산업 간 융합·협업을 가로막는 칸막이 규제 △규제 대상을 광범위하게 지정하는 투망식 규제 △비합리적 중복·과잉 규제 등을 신산업 성장을 막는 핵심 규제로 지정하고 정부에 개선을 촉구했다.

유통사업자는 택배 사업을 겸업할 수 없어 국내에서는 미국 아마존처럼 드론을 활용해 물건을 배송하는 서비스가 아예 불가능한 사례, 보험사의 핀테크 기업 출자가 제한돼 빅데이터 분석업체를 인수해 활용하는 길이 막힌 사례 등을 대표적 규제 피해 사례로 들었다.

이동근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전통 산업에서 정부가 로드맵을 만들고 기업이 따라가는 게 상식이었다면 신산업에서는 기업이 앞장서 신기술, 신시장을 개척할 수 있도록 규제를 과감히 완화하고 인프라를 확충하는 게 시급하다”고 말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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