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베이스볼] 사연도 갖가지, KBO리그 감독대행의 역사

  • 스포츠동아
  • 입력 2017년 5월 26일 05시 30분


한화 이상군 감독대행.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한화 이상군 감독대행. 사진제공|스포츠코리아
한화 김성근 감독이 시즌 도중 갑작스럽게 퇴진했다. 이에 따라 한화는 23일 대전 KIA전부터 이상군 투수코치를 감독대행에 임명해 시즌을 진행하고 있다. KBO리그에서 감독대행의 역사는 오래 됐다. 그 속에 숨은 사연도 갖가지다.

● 원년 14경기째부터! 유구한 감독대행의 역사

KBO리그의 감독대행 역사는 출범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됐다. 역대 최초의 감독대행은 원년인 1982년 삼미 이선덕 코치였다. 삼미의 창단 감독은 ‘아시아의 철인’으로 불린 박현식(작고) 감독이었는데, 단 13경기 만에 성적부진으로 낙마했다. 특히 4월25일 춘천구장에서 열린 OB전이 결정타였다. 2회까지 8점을 뽑아내며 8-0으로 앞서다 11-12로 대역전패를 당한 것.

분통이 터진 삼미 고위층은 결국 박 감독을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면서 4월27일부터 이선덕 투수코치에게 잔여시즌을 맡겼다. 그러나 전력 자체가 약했던 삼미로서는 반전을 이루지 못했다. 박현식 체제에서 시즌 3승10패(승률 0.231)를 기록했지만, 이선덕 대행체제에서 12승55패(승률 0.179)로 더 부진했다. 그해 승률 0.188(15승65패)은 역대 최저승률로 남아 있다.

해태도 원년 13경기 만에 감독대행을 찾아야했다. 해태 창단 감독은 빨간장갑의 마술사 김동엽 감독으로, 강한 쇼맨십까지 갖춰 당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인물이다. 해태 박건배 구단주는 프로야구 창설을 주도한 이용일 KBO 초대 사무총장에게 “김동엽 감독을 우리 팀에 주지 않는다면 프로야구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을 정도였다. 그러나 13경기 만에 이별하고 말았다. 성적부진(5승8패)도 있었지만, 코칭스태프와 불화가 결정적이었다. 해태는 4월29일부터 조창수 코치에게 감독대행을 맡겨 잔여시즌을 치렀고, 이후 김응용 감독을 사령탑으로 불러 우승신화를 쓰기 시작했다.


● KBO리그 36년 총 39명 56차례 감독대행

올해로 36시즌을 맞는 KBO리그는 최근 이상군 감독대행까지 총 56차례 감독대행 체제를 기록하고 있다. 그 중 한번이라도 감독대행을 맡은 사람은 총 39명. 2차례 이상 감독대행에 오른 인물은 8명으로, 그 중 유남호 전 KIA 감독은 역대 가장 많은 5차례를 기록했다. 1998년과 1999년 해태 시절 김응용 감독이 징계로 빠졌을 때 1경기씩 감독대행을 맡은 그는 2000년에는 9월1일부터 3일까지 4경기(더블헤더 포함), 그리고 10월5일 1경기 등 한달 사이에 2차례 감독대행으로 임명되기도 했다. 이어 KIA로 넘어간 뒤 김성한 감독이 2004시즌 도중 해임되자, 7월27일부터 시즌 종료까지 다시 감독대행을 맡았다. 이때 유남호 감독대행은 잔여경기에서 26승18패1무(승률 591)의 호성적을 거두면서 마침내 정식 감독에 오르는 감격을 맛봤다. 그러나 이듬해 성적부진으로 84경기 만에 중도퇴진하면서 서정환 코치에게 감독대행 자리를 물려주는 기구한 운명을 겪었다.

한편 역대 감독대행의 역사에서 2000년 9월1일부터 3일까지 3명이 동시에 감독대행직을 수행한 것이 눈에 띈다. 해태 유남호, 두산 유지훤, SK 김준환 감독대행이었다. 이때는 시드니올림픽 기간이라는 특수 상황 때문이었다. 당시 코칭스태프로 참여한 해태 김응용 감독, OB 김인식 감독, SK 강병철 감독을 대신해 임시로 지휘봉을 잡은 것이었다.

전 두산 유지훤 감독대행. 스포츠동아DB
전 두산 유지훤 감독대행. 스포츠동아DB

● 김성근도 강병철도 감독대행에서 명장으로

감독대행 자리가 반드시 감독 자리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김성근 감독도 처음엔 감독대행부터 출발했다. 원년인 1982년 8월5일부터 19일까지 7경기(5승2패)를 감독대행으로 지휘했다. 그런데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특수한 사연이 숨어 있다. 원년인 1982년은 전기리그와 후기리그로 나눠 40경기씩, 연간 총 80경기를 치르던 시절. OB는 당시 김영덕 감독을 전기리그 우승으로 한국시리즈 진출권을 획득하자, 후기리그가 한창 진행되던 8월에 약 보름간의 일정으로 일본에 잠시 여행(명목상으로는 단기연수)을 보내주면서 김성근 감독대행이 7경기를 지휘하게 됐던 것이었다. 1984년부터 정식 OB 감독에 오른 김성근 감독은 이후 2001년 LG 이광은 감독이 물러나자 5월16일부터 시즌 끝까지 감독대행을 맡았다가 LG 정식 사령탑에 오르기도 했다.

강병철 감독은 1983년 7월에 물러난 초대 사령탑 박영길 감독의 뒤를 이어 감독대행을 수행한 뒤 정식 감독에 올라 1984년 롯데의 첫 우승을 이끌었다. 감독의 중도하차 후 감독대행직을 잘 수행해 곧바로 정식 감독에 임명된 첫 사례였다. 감독대행에서 곧바로 정식감독에 임명된 사례는 강병철 감독을 포함해 2011년 SK 이만수 감독대행까지 총 14차례 있었다.

그러나 감독대행만 하다 한번도 정식감독을 하지 못한 사례는 더 많다. 김준환 감독대행은 대표적으로 불운한 케이스다. 1994년과 1999년 쌍방울, 2000년 SK에서 감독대행직만 3차례 수행했다. 그런데 1999년 말 쌍방울 정식 감독으로 승격됐지만, 쌍방울이 해체되고 SK가 창단하면서 단 1경기도 감독으로 지휘하지 못했다. 당시 SK 초대 사령탑에 오른 강병철 감독을 보좌해 수석코치 역할을 수행했다.

김성근-강병철(오른쪽). 사진|동아일보DB·롯데 자이언츠
김성근-강병철(오른쪽). 사진|동아일보DB·롯데 자이언츠

이재국 기자 keyston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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