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소기업 사이 길잃은 신세 중견기업 키워야 경제도 활력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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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 기업정책 어디로]<中> 한국경제, 허리기업이 없다

《 한국 경제의 ‘성장 사다리’가 부러져 있다. 경제의 허리 역할을 해야 할 중견기업들이 성장 걸림돌에 부닥쳐 중소기업보다도 못한 초라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새 정부의 경제정책에도 중견기업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중견기업들 사이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낀 ‘낙동강 오리알’ 신세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위기감이 돌고 있다. 여기에 중소기업들은 중견기업으로 성장할 경우 포기해야 하는 각종 지원 정책 때문에 ‘피터팬 증후군’에 빠져 있다. 》
 
중소기업으로서의 혜택을 받지 못하느니 차라리 성장을 멈추는 게 낫다는 것이다. 새 정부 경제 정책의 성패는 중소기업→중견기업→대기업으로 이어지는 경제 역동성을 얼마나 회복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끊긴 사다리, 닫힌 성장판

16일 동아일보와 한국경제연구원이 2011∼2016년 기업 규모별 성장 추이를 분석한 결과 중견기업들의 성장 정체가 두드러졌다. 이번 분석은 외부감사를 받는 제조기업 8677개를 대상으로 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이 각각 181개, 1117개이고 중소기업이 7379개다.

‘중견기업 성장 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중견기업특별법)은 2014년 7월 시행됐다. 10년 한시법으로 한국 경제의 허리를 제대로 육성하겠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중견기업들의 자산 증가율은 2011∼2013년 평균 5.95%에서 2014∼2016년 평균 2.81%로 반 토막이 났다.

중견기업특별법 시행 후 3년간 중견기업의 성장 속도는 대기업(3.12%)과 중소기업(6.47%)에 모두 못 미쳤다. 2011∼2016년 연평균 매출액 증가율은 대기업 3.18%, 중견기업 4.19%, 중소기업 4.42%였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평균 매출액 증가율은 2014∼2016년 3년 연속 마이너스다. 대기업의 경우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빅2’의 매출액이 2015, 2016년 정체기를 맞았던 영향이 크다.

중견기업으로 올라서는 문턱을 넘지 않고 중소기업에 계속 머무르거나 중견기업이 됐다가 도리어 중소기업으로 회귀하는 피터팬 증후군도 심각했다. 자산 기준으로만 따졌을 때 5000억 원을 초과해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새로 편입된 기업은 2011∼2015년 63개사. 이 중 16개 기업(25.3%)은 자산 규모가 줄어 다시 중소기업으로 돌아갔다. 특히 10곳은 중견기업에 머문 기간이 고작 1년이었다.

의류업체 A사는 2012년 4080억 원, 2013년 6110억 원, 2014년 4650억 원, 2015년 5080억 원, 지난해 4970억 원 등 중견기업 자산총액 기준을 ‘퐁당퐁당’ 넘고 있다. 석유화학업체 B사와 C사, 자동차부품 회사 D사 등은 짧게는 3년, 길게는 5년씩 4000억 원대 후반의 자산을 유지하고 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중견련)에 따르면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올라서자마자 지원이 사라지거나 줄어드는 혜택은 지난해 말 기준으로 62건이나 된다. 중소기업을 졸업하면 취득세, 재산세, 법인세, 소득세 감면 등 갖가지 세제 지원이 줄줄이 쪼그라들거나 사라진다. 기업소득 환류세, 내부거래 과세 등은 새로 적용받는다.

○ 중견기업 정책 실종

중견기업들의 ‘위기의식’은 대선을 거치면서 더 커졌다. 대선 후보들의 중견기업 관련 공약이 아예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후보 당시 ‘중소기업 보호·육성’과 ‘재벌 개혁’에만 초점을 맞췄다.

연간 매출액 규모가 1조 원대인 중견기업 E사 관계자는 “새 정부가 재벌 개혁, 중소기업 육성, 스타트업·벤처 얘기만 할 뿐 중견기업에 대한 얘기가 없다. 중견기업 사이에서는 ‘지금이 최대 위기다’, ‘앞으로 중견기업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하다”고 털어놨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법제화 추진 분위기에 긴장하는 기업도 많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에서는 중견기업도 대기업과 유사한 기준을 적용받아 시장 진출이 막히거나 판로가 제한된다. 중견기업 F사 관계자는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공장 증설이나 인수합병(M&A)을 못 하게 되는데 기업이 어떻게 성장할 수 있나. 법제화까지 되면 정말 큰일이다”고 걱정했다.

중견기업특별법 제정과 함께 법정단체로 출범한 중견련도 위상을 잃어가고 있다. 중견련은 대한상공회의소, 중소기업중앙회에 이은 세 번째 법정 경제단체다. 그러나 중견련은 지난 대선 기간 더불어민주당 비상경제대책단이 마련한 경제단체장 초청 간담회에 초대장도 받지 못했다. 2015년 문을 연 중견기업연구원도 현재 박사급 2명만 남아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다. 설립 2년 만에 존폐 위기에 몰려 있는 셈이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중견기업은 기업 수로는 국내 전체 기업의 0.08%에 불과하지만 고용의 5.6%, 수출의 15.7%를 차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중견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춰 세계시장에 진출하도록 하는 제도적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장은 “내수시장을 놓고 중소기업과 다투거나 대기업의 하청 구조에 안주하지 말고 중견기업이 수출 기업으로 거듭나도록 하는 데 정책의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민지 jmj@donga.com·김창덕 기자
#대기업#중소기업#중견기업#경제#문재인#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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