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원 “규제탓 일자리 안생겨… 中이 해보는건 다 해보자”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의 ‘일자리論’

《 2월 “당분간 경제에 도움이 되는 정치’를 기대하긴 어려울 것 같다”는 발언으로 화제를 모은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 회장(65)을 만났다. 12일 오후 서울 마포구 백범로 경총회관 8층 집무실에서였다. 회색 재킷에 청록색 볼로타이를 맨 수수한 모습이었다. 박 회장은 경제 관료 시절 청와대 386과 맞붙는 등 자신의 유·불리를 가리지 않고 바른말을 쏟아내 후배들로부터 ‘돌직구’로 불렸다. 인터뷰가 시작되자 그의 명성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 경제에 대한 고민부터 대중을 향한 쓴소리까지 2시간 동안 그는 작심 발언을 쏟아냈다. 》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는 한편 규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박병원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우리 사회의 심각한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하는 한편 규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 “세금으로 실업문제 해결할 수 없어”


일자리 해법부터 물었다. 대통령 선거 후보들이 앞다퉈 내놓고 있는 ‘장밋빛’ 일자리 공약을 화제로 꺼내자 박 회장의 목소리 톤이 올라갔다. “세금으로 실업 문제 해결된다면 유럽 복지국가들은 왜 청년 실업률이 20%에 육박하겠나. 세금 투입해 만드는 일자리는 절대 성공할 수 없다.”

박 회장은 “경제 상황이 심각하다는 것은 후보들도 모두 알고 있는 것 같다”면서도 “4차 산업혁명으로 새 일자리를 만들 수 있을 것처럼 말하는데, 일자리 창출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금 일자리 문제는 그렇게 한가한 상황이 아니며 당장 일자리를 창출해낼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최근 경총이 실시한 신규 인력 채용 조사에서 올해 채용 계획이 있는 기업은 53.7%로 2010년 49.4% 이후 최저치였다. 신규 인력 채용 규모도 지난해보다 6.6% 쪼그라들면서 올 한 해 심각한 취업난을 예고했다.

그는 “소방공무원, 경찰관, 복지공무원 등 공공부문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은 ‘상위 30%’만을 위한 일자리 정책일 뿐이다”고 평가했다. 일자리가 절박한 이들을 위해 정책의 우선순위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놓고, 외국인 전용 병원을 허용해 주는 것이 더 빨리,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 길이다”고 했다.

○ “신규 채용 때라도 근로계약 유연하게”

노조에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박 회장은 현행 노동법제가 이미 일자리를 얻은 근로자들의 기득권 유지만을 위한 법이라며, 노동시장의 고용 기회를 늘리는 쪽으로 노동법이 개정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그대로 놔두고는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 판을 흔들면 노조가 가만히 있겠나? (노동시장의) 기득권을 건드리지 않더라도, 새로 취직하는 젊은이들에게는 근로 계약을 유연하게 적용하도록 하자. 그것만이라도 해 봤으면 좋겠다는 게 내가 고민 끝에 내린 절충안이다.”

박 회장은 경제계에서 ‘일자리 전도사’인 동시에 ‘서비스업 전도사’로 불린다. 제조업에서 일자리가 창출되는 시대는 지났고, 서비스업 관련 규제들을 풀어 일자리를 대거 만들어 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일관된 철학이다.

“왜 농업과 서비스업은 시장 논리로 접근하지 않고, 국민들에게 저렴하게 제공하라는 ‘국가적 과제’를 요구하나. 그 사이에 우리는 경쟁에서 갈수록 도태되고 있다.”

그는 2012년 동부팜한농(현 LG화학 자회사 팜한농)이 수출용 토마토를 재배할 유리온실을 지었다가 농민단체 반대로 사업을 접고, 지난해 LG CNS가 전북 새만금지구에 대규모 ‘스마트팜’ 단지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대기업 진출에 반대하는 국내 정서에 막혀 포기한 사례를 열거하며 안타까워했다.

규제 완화가 시급한 예로 핀테크(금융기술), 드론(무인비행장치) 산업, 원격진료 등을 꼽았다. 그는 “드론 시장을 중국이 먹을 때까지 우린 규제에 막혀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기준으로 중국은 세계 시장에서 상업용 드론의 90% 이상을 생산하고 있다. 한국은 전파법과 항공법에 발목을 잡혀 드론 시장이 여전히 걸음마 수준이다. 그는 “반도체 정도만 중국에 겨우 반 발짝 앞서 있을 뿐 나머지는 이미 다 (중국에) 따라잡혔다”고 일갈했다. 또 “우리가 규제에 묶여 있는 20∼30년 사이에 중국에서는 한국 대기업보다 큰 기업들이 많이 생겨났다. 이제는 그들과 싸워야 하는 힘겨운 상황에 놓였다”고 진단했다.

○ “대기업 자체는 국가의 자산”

그는 “아무것도 안 바꾸면 아무것도 안 바뀐다”며 정부와 기업은 물론이고 이제는 국민들도 생각을 전환해야 할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박 회장은 “‘적어도 중국이 해보는 건 다 해보자’라는 결심이 국민들 생각 속에 있어야 한다. 지금껏 해 온 대로만 하겠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된다고만 하면 일자리는 절대 안 생긴다”고 말했다.

미르재단 사태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 등을 둘러싸고 반(反)기업 정서가 거세지고 있는 분위기에는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박 회장은 “대기업 경영자의 잘못된 행태에 대해서는 가차 없이 처벌해야 하지만 대기업 자체는 국가의 자산이다. 한국 경제를 대표하는 국가대표 선수다. 이들이 자유로운 투자를 통해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정민지 기자 jmj@donga.com

● 박병원 경총 회장은

△1952년 부산 출신 △경기고, 서울대 법대, 미국 워싱턴대 경제학 석사 △행정고시 17회 △재정경제부 차관(2005년) △우리금융지주 회장(2007년) △대통령경제수석비서관(2008년) △전국은행연합회 회장(2011년) △경총 회장(2015년∼) △(현)포스코 이사회 의장
#박병원#경제#한국경영자총협회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