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합병 찬성했던 증권사 상당수 “지금 판단해도 찬성”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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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22곳중 21곳 찬성

 지난해 9월 마무리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이 ‘최순실 게이트’와 엮이며 1년여 만에 다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그 당시 국내 증권회사 중 유일하게 두 회사의 합병에 반대하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냈던 한화투자증권 주진형 전 사장이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화증권을 제외한 다른 증권사들이 모두 합병에 찬성하는 보고서를 낸 것은 너무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해 논란은 더 커졌다.

 1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이사회가 각각 합병을 결의한 5월 이후 7월 초까지 국내 22개 증권사 리서치센터 가운데 한화투자증권을 제외한 21곳이 ‘긍정’ 의견을 냈다. 당시 리포트들은 “합병 시너지 효과가 충분하다. 중장기적으로 주가 상승 여력이 충분하다”는 의견을 공통적으로 담았다. 오히려 제때 합병이 되지 않으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가 하락이 불가피하다는 우려가 많았다.

 동아일보는 24일 당시 합병에 찬성하는 보고서를 냈던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에게 “1년 전 선택에 후회가 없는지” 물었다. 대형 증권사 소속으로 1년 전과 같은 자리에 있는 애널리스트들을 대상으로 했다. 답변은 한결 같았다. “그 당시 합병이 안 됐으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주가는 지금 더 많이 떨어졌을 것이다. 1년 전으로 돌아가더라도 다시 찬성 의견을 낼 것이다.”

○ 1년 전 합병 안 했으면

 투자전문가들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 이슈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승계라는 지배구조 차원과 함께 사업구조 재편이라는 사업적 측면도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애널리스트 A 씨는 “당시 삼성물산의 주요 사업 포트폴리오를 보면 상사 부문은 이미 성장이 정체돼 있었다”며 “건설 부문은 지난해 하반기(7∼12월)에만 적자가 1조 원 넘게 났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이 지금의 주가를 유지할 수 있는 건 합병 후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중심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2014년 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 간 합병이 무산된 뒤 두 회사의 주가가 대략 6분의 1로 줄어든 점을 강조하며 “삼성물산도 이 정도로 줄어들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보면 삼성물산 주주로서는 합병으로 이익을 본 게 분명하다. 오히려 바이오 사업이라는 성장 가능성을 갖고 있던 제일모직 주주가 손해를 봤다고 할 수 있는 상황이다. 국민연금은 합병 전 삼성물산 지분 1조2200억 원어치, 제일모직 지분 1조1800억 원어치를 갖고 있었다. 결국 전체적으로 볼 때 국민연금도 찬성하는 게 타당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당시 삼성그룹은 “이번에 합병에 실패하면 재추진하지 않는다”고 공식 발표했다. 당시 합병 이슈를 지켜봤던 재계 관계자는 “애국심 마케팅에 호소한 게 성과가 있었다는 분석도 있었지만, 사실 잘 보면 상당수 주주가 합병에 실패할 경우 자신들이 가진 주식이 휴지 조각이 될 거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합병에 실패했더라면 합병 후 드러난 삼성물산 건설 부문의 대규모 부실을 털고 가지 못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3분기(7∼9월) 2조6000억 원에 이르는 옛 삼성물산의 잠재손실을 공시했다. 애널리스트 B 씨는 “삼성엔지니어링은 합병이 무산된 뒤 혼자 버티려고 유상증자까지 했던 반면 삼성물산은 손실이 희석됐다”고 설명했다.

○ 합병 비율 잘못됐다는 건 법을 바꾸자는 것

 애널리스트들은 최근 국민연금공단에 대한 검찰 수사와 맞물려 다시 제기된 합병 비율 논란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당시 제일모직은 삼성물산을 1 대 0.35 비율로 흡수합병했다.

 B 씨는 “어느 회사나 합병 비율은 순전히 시장 가격으로 판단할 문제”라며 “그 당시에도 지금도 (합병 비율 계산에) 가치관은 개입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1 대 0.46이 적정하다고 적은 국민연금 회의록이 뒤늦게 공개된 데에 대해 “미래 가치를 최대한 배제하고 현재 가치 기준으로만 판단했을 때 그렇다는 아주 보수적인 판단”이라고 해석했다. 이어 “‘검찰과 경찰은 현재를 보고, 주식 투자자들은 미래를 산다’는 말이 있다”며 “투자는 미래를 보고 하는 것인 만큼 당시 시장은 분명 삼성물산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봤다”고 단언했다.

 애널리스트 C 씨는 “이제 와서 합병 비율이 ‘틀렸다’는 건 자본시장법을 바꾸라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민연금이 왜 1 대 0.46이라는 수치를 제시했는지 의문이지만, 연금의 손실을 피하기 위해 합병 비율을 틀리게 계산했다는 건데, 그게 더 이기적이고 잘못된 것 아닌지”라고 의문을 표시했다.

 결국 삼성물산이 그 당시 시장에서 기대했던 만큼의 사업 성과와 잠재력을 보여주는 것이 정답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애널리스트 D 씨는 “일단 지배구조 개선 측면에서는 긍정적이고, 그때 의도했던 대로 효과를 본 것이 맞다”면서도 “다만 1년 새 경제 환경이 너무 빠르게 바뀌면서 사업 부문에서는 의도했던 만큼 시너지 효과가 안 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지현 jhk85@donga.com·이건혁 기자
#삼성물산#합병#증권사#제일모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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