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R]카톡! 휴일에도 업무 지시… 조직은 멍들어간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6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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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무 강도 높은 직장의 부작용

왜 팀장은 꼭 퇴근 5분 전에 새로운 일을 던지는 걸까? “김 과장, 이번 계약 건 내일 아침에 사장님께 보고 올려야 하니까 자료 준비 좀 해줘요.” 예정에 없던 야근은 한국의 화이트칼라 직장인에게 일상다반사다.

그래도 과거엔 상황이 나았다. 야근을 하더라도 퇴근 후에는 푹 쉴 수 있었다. 하지만 21세기의 직장인들은 집에서조차 마음이 편치 않다. 이메일과 휴대전화 때문이다. 집에 와서도 언제 회사에서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편히 잠을 이룰 수 없다. 침대에 누운 채로 ‘까똑 까똑’ 하는 카카오톡 알림소리 환청을 듣고 전화기를 들여다보기도 한다.

주말에도, 잠잘 때에도 회사일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대 직장인의 운명일까. 한국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실리콘밸리나 월스트리트에서도 과도한 업무시간과 사생활 침해가 문제가 되고 있다. 2013년에는 미국의 대형 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의 런던지사에서 일하던 21세 대학생 인턴이 숙소 샤워실에서 숨진 채 발견돼 금융계에 충격을 줬다. 매일같이 이어지는 야근과 스트레스 때문이었다.

이렇게 주 7일, 24시간 내내 일에 신경 쓸 것을 요구하는 기업문화는 화이트칼라 사무직, 특히 금융계와 법조계 등 고소득 전문 직종에 널리 퍼져 있다. 보수를 많이 받는 일일수록 사생활을 포기하고 회사일에 전념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걸까. 업무시간과 성과의 관계, 그리고 지나친 업무시간의 부작용에 대해 최근 미국 보스턴대와 하버드대의 경영학자들이 논문을 펴냈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 한국어판 6월호에 실린 기사를 요약해 소개한다.

○ 업무 압박에 대응하는 회사원들의 3가지 전술

현대 기업이 요구하는 이상적인 직원이 되기 위해서는 사생활과 가족, 개인적 목표 등을 희생해야 한다. 한밤중에 상사의 휴대전화 문자메시지가 날아들면 답을 해야 하는지, 안 해도 되는지 고민하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사람들은 다음의 세 유형 중 하나로 반응한다.

① 일에는 성공, 인생에선 실패 ‘순응’ 전략

사생활을 순순히 희생하는 사람들이 있다. 가족 모임이나 데이트 중이라도 회사에서 연락이 오면 즉시 처리한다. 연구진이 설문조사를 했던 한 컨설팅 회사에서는 직원의 43%가 이렇게 365일 일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순응형 인간이었다.

일이 즐겁고 보상이 충분할 때는 이렇게 회사에 충성하며 사는 것도 좋다. 승진 경쟁에서도 앞서갈 수 있다. 문제는 직장에서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다. 심리적으로 모든 계란을 한 바구니에 몰아 담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일이 잘못됐을 때, 특히 회사에서 나가게 됐을 때 대처하기 힘들어한다. 더군다나 이런 사람들은 자신과는 달리 사생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를 이해하지 못해 종종 마찰을 일으키기도 한다.

② 이직률 높은 ‘위장’ 전략


두 번째 부류는 회사일 외의 다른 활동에도 시간을 투자하지만 회사의 레이더에 걸리지 않도록 위장하는 사람들이다. 설문 응답자의 27%가 여기에 속했다.

미국의 한 투자은행 직원은 여가 시간에 가수로 활동하면서 음반도 석 장이나 냈지만 직장생활 초기에는 이를 비밀에 부쳤다. 노래하는 데 시간을 쏟는 것을 회사에서 알게 되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한 컨설턴트는 평소에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회사에서 알 수 없도록 하는 방법으로 여유 시간을 마련한다고 고백했다. 고객사로 출근했다고 해놓고는 집에서 일한 적도 많았다. 심지어 근무시간 중에 스키장에 놀러 다니기도 했다.

이렇게 ‘위장’ 전술로 항상 열심히 일하는 척하는 직원들의 업무 성과는 어떨까. 평균적으로 보면 100% 회사에 순응하는 직원들과 별 차이가 없었다. 바꿔 말하면, 이들은 남보다 시간을 적게 써도 성과에서 뒤처지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에 때때로 농땡이를 부리는 것이다. 다만 이런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심리적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알기를 바란다. 직장에서 자기를 솔직하게 드러내지 못하면 마음 한구석이 늘 찜찜하다. 항상 열심히 일하는 동료들을 대할 때나 부하 직원들을 관리할 때도 자신감이 부족하다. 그래서 이런 ‘위장하기’ 유형의 사람들은 퇴직률이 높았다.

③ 커리어에서 손해 보는 ‘드러내기’ 전략

마지막으로 당당하게 사생활도 중요하다고 밝히는 사람들도 물론 있다. 인터뷰한 사람 중 30%가 이런 유형에 해당했다. 저녁시간에 문자메시지를 받으면 “내일 처리하겠습니다”라고 답하거나 아예 응답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사생활도 중요함을 솔직히 드러내는 사람들은 마음이 편안하다. 하지만 현실은 가혹하다. 승진이나 보수에서 불이익을 당한다는 것이 데이터로 증명된다. 임신 8개월의 아내를 돌보기 위해 휴직을 신청한 컨설턴트는 상사로부터 “이 분야의 프로가 되고 싶어? 아니면 그냥 평범한 사람이 되고 싶어? 네가 세계적인 수준에 오르고 싶다면 모든 것을 던져야지”라는 핀잔을 들었다. 또 조직 내에서 어떤 일을 추진할 때 동료들의 응원과 협조를 얻기도 어렵다.

○ 자율을 위한 강제가 필요하다

이렇게 직원 입장에서는 회사에 100% 헌신하든, 그러는 척하든, 아니면 대놓고 저항하든 어느 정도는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근본적으로 회사 차원에서 업무 문화를 바꾸는 게 가장 바람직한 대안이다. 특히 직원들이 일한 시간, 혹은 일했다고 주장하는 시간이 아니라 실제로 낸 성과를 기준으로 포상하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직원 자율에만 맡겨서는 자율적인 업무 문화가 형성되기 어렵다. 너무 자유로운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눈치를 본다. ‘내가 쟤보다 더 많이 일하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식의 불필요한 경쟁심이 발동한다. 따라서 회사가 어느 정도는 가이드라인을 정해 줘야 한다. 정기휴가를 누구나 다 쓸 수 있게 보장해 주고, 출퇴근 시간을 예측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만으로도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럼 회사원 개인 입장에선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우선 사람마다 일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남들이 나만큼 오래 일하지 않는다고 짜증낼 필요도 없고, 남들이 나보다 오래 일한다고 너무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만일 내가 어느 정도 회사를 속이면서 사생활을 지키는 타입이라면 적어도 신뢰하는 동료 몇 명에게는 고백하라. 내 마음도 편해지고, 그 동료들 역시 개인적 삶을 희생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덜 수 있을 것이다.

조진서 기자 cjs@donga.com
#카톡#휴일#업무 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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