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産銀에 조선·해운업 떠맡겨 ‘死則生 구조조정’ 되겠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7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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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어제 ‘3차 산업경쟁력 강화 및 구조조정 협의체’에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강제 합병이나 대우조선해양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 조선 3사의 ‘빅딜’은 없다고 밝혔다. 기존의 5대 취약 업종(조선 해운 건설 철강 석유화학) 가운데 78조 원의 빚을 지고 있는 조선과 해운업만 ‘경기 민감 업종’으로 정해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 주도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는 강도 높은 자구(自救) 노력을 요구했다. 그러나 이런 수준의 구조조정 방안은 어제 본란이 지적한 대로 ‘부실기업을 산은 자회사로 편입하는 식의 모르핀 처방’과 다름없어 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개혁과는 거리가 멀다.

임 위원장은 “소유주가 있는 기업의 합병 및 통폐합을 정부 주도로 추진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며 사즉생(死則生)의 의지를 밝혔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수술이 무섭다고 (구조조정을) 안 하고 있다가는 죽음에 이를 수도 있다”며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강조한 데 견주면, 정부가 욕먹을 각오로 전체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는 구조조정에 나섰다고 보기는 어렵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용선료 협상이 결렬될 경우 법정관리 절차를 밟는다고 했지만 한 곳이라도 퇴출시킬 수 있다는 정부 의지가 있는지 의문이다.

이 기업들의 부실을 떨어내는 데 필요한 수십조 원의 재원 마련에 대해 임 위원장이 “조만간 관련 기관들과 논의하겠다”고 한 것도 무책임하다. 박 대통령이 어제 시사한 ‘한국형 양적완화’ 방안은 한국은행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것이어서 정부 빚은 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좀비 조선·해운기업을 마냥 연명시켜 주는 ‘돈 먹는 하마’로 만들 가능성이 더 커질 수 있다.

그동안 정부 당국은 일관성 없는 구조조정 정책으로 시장에 혼선을 키웠다. 부실기업을 살려내기는커녕 자회사에 낙하산 자리나 만들며 부실을 방조한 산업은행에 책임을 물은 적도 없다. 구체적 액션플랜과 일정이 빠진 이번 방안으로 구조조정이 실패하거나 타이밍을 놓친다면 해외 투자가들도 한국의 개혁 의지를 의심하게 될 것이다.
#임종룡#구조조정#부실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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