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빚줄이기 독촉하다 침몰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12일 03시 00분


코멘트

불황 늪 해운업… 외국은 과감한 정부지원 통해 살렸는데

한국 해운업이 ‘침몰 위기’에 처하면서 자국 정부의 지원으로 위기를 벗어난 외국 해운사들의 사례가 주목받고 있다. 해운업 위기가 조선과 항만 산업까지 번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는 가운데 ‘금융 채무조정’이 아니라 ‘산업 구조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 논의의 핵심이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이 경영난에 처하면서 해운업계에서는 2009년부터 시작된 해운업계 불황 초기 정부의 대응에 아쉬움을 토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거시적인 안목 없이 업체별 ‘빚 줄이기’에만 몰두하느라 전 세계적으로 진행된 ‘선박 대형화’ 움직임을 따라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팬오션과 대한해운 등 대형 해운사들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국내 해운사들은 부채를 줄이기 위해 선박 발주는커녕 오히려 있는 자산도 내다팔 수밖에 없었다. 이때 정부는 한국 조선업을 살리기 위해 오히려 외국 해운사에 금융지원을 해줬다. 이때 주문한 1만60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급 이상 대형 선박을 통해 세계적인 해운사들은 운임을 낮출 수 있었다. 2008년 머스크와 한진해운의 영업이익률 차는 0.8%포인트였지만 2013년 9.6%포인트까지 벌어졌다. 해운업계에서 “당시 국내 해운사에 금융지원을 해서 국내 조선소에 발주를 하게 했다면 해운업과 조선업을 동시에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는 볼멘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세계 1위인 머스크를 비롯해 세계적인 해운사들도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해운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정부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머스크는 덴마크 정부로부터 총 67억2000만 달러(약 7조7045억 원)의 대출을 받아 대형 선박을 확보했다. 독일 하팍로이드는 독일 중앙 정부로부터 이 회사 채무 18억 달러에 대한 지급보증을 받았다. 중국도 자국 선사 코스코에 총 157억 달러를 지급보증했고, 일본은 해운사들이 이자율 1%로 10년 만기 회사채를 발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프랑스 정부도 채권자와 선주 등 이해당사자들이 조금씩 양보하도록 권유하고 채무재조정을 했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지원을 요청하는 업계와 ‘선박을 팔아서라도 빚을 줄이는’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정부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현재 4대 해운동맹(얼라이언스)이 주도하고 있는 세계 해운업계는 인수합병이 활발히 일어나 조만간 3대 체제로 개편될 것으로 전망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어려움이 지속될 경우 해운동맹 재편 과정에서 소외될 수 있다”며 “이럴 경우 두 업체가 지난 30∼40년간 구축한 글로벌 네트워크가 물거품이 되고 동북아 물류 패권은 중국과 일본이 가져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해운업#채무조정#구조조정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