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최영해]폴크스바겐, 한국은 봉인가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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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해 국제부장
최영해 국제부장
2012년 미국 대선 취재 출장길에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공항에서 자동차를 렌트했다. GM 밴을 빌렸는데 차가 워낙 무거워 마치 탱크를 모는 기분이었다. 외진 미국의 지방 공항을 가면 크라이슬러나 GM 포드 등 미국 자동차들만 수북하다. 왜 미국 차만 잔뜩 갖다 놨을까. 누구는 미국의 자존심과 애국심의 발로라고 해석했지만 사실은 시중에서 잘 안 팔리기 때문이다. 새 차는 공항에 렌터카로 먼저 풀리고 1, 2년 후에 중고차 시장에 나온다. 인기 없는 미국 차가 유통되는 구조였다.

미국은 자동차 소비자의 천국이다. 세계의 유명 자동차 메이커들이 각축전을 벌인다. 현대자동차 에쿠스 제네시스 쏘나타 아반떼(엘란트라)는 한국보다 저렴하다. 현대차는 옵션 차이라며 가격 차는 없다고 주장하지만 미국에서 차를 사 본 사람이라면 회사 측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장기 체류 주재원들이 200만 원이 넘는 운송비용을 지불하고도 현대차를 가져오는 것은 이문이 남기 때문이다.

2010년 도요타 프리우스 급발진 사고로 일본차의 미국 질주에 제동이 걸린 적이 있다. 도요다 아키오 사장이 미 의회 청문회장에 불려왔다. 도요다 사장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혹독한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사장이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안쓰러운 생각도 들었지만 그게 미국이었다. 도요타는 1000만 대를 리콜하고 벌금과 합의금 조로 20억 달러(약 2조4000억 원)를 토하고서야 검찰 기소를 면제받을 수 있었다. 잘나가는 일본 자동차에 본때를 보이는 미 정부의 보호무역 정책이 배후였다. 냉엄한 현실이었다. 미 자동차업계와 백악관 의회가 일심동체(一心同體)였다. 도요타가 휘청거리는 사이 현대차가 반사 이익을 얻었다. 하지만 주미 한국대사관에선 “언제 우리한테 칼날을 겨눌지 모른다”고 불안해했다.

이번에는 유럽차 폴크스바겐이 걸렸다. 승승장구하는 환경친화 차량이다. 배기가스를 조작한 혐의로 미 법무부가 낸 민사소송의 벌금가액은 900억 달러, 우리 돈으로 108조 원이다. 사기 혐의도 조사받는다. 마티아스 뮐러 폴크스바겐 회장이 몇 번이나 머리를 조아렸다. 문제가 된 차는 모두 되사주겠다고 약속했다. 테네시 주 공장에 9억 달러(약 1조 원)를 투자해 2000명의 취직자리를 만든단다. 이것도 모자라 한 사람 앞에 1000달러씩 현금 선물 공세도 편다.

도요타든 폴크스바겐이든 찍히면 회사가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미국은 본때를 보인다. 한번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 거대한 구매력과 세계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의 지위 때문일 것이다. 폴크스바겐은 도요타에 이어 시장을 넘본 대가를 혹독하게 치르게 될 것이다.

서슬 퍼런 미국에 폴크스바겐은 연일 머리를 조아린다. 그런데 한국에선 사태 이후 폴크스바겐이 오히려 승승장구하고 있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환경부가 때린 과징금 141억 원에 리콜 명령이 전부였다. 솜방망이 처벌 아닌가. 폴크스바겐이 낸 리콜계획서가 부실한 것으로 드러나자 환경부는 뒤늦게 한국법인 사장을 고발했다. 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가 환경부에 낸 수십 쪽의 결함시정계획서에 결함 원인에 대한 얘기는 달랑 한 줄이었다. 이런 게 뒷북 행정이다.

폴크스바겐은 되레 60개월 무이자 할부 마케팅으로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철퇴를 가해야 할 소비자마저 상술에 놀아나니 한심한 노릇이다. 뒤늦게 검찰과 공정거래위원회가 나섰지만 언론에서 떠드니 마지못해 팔을 걷어붙이는 모양새다. 미국에선 하루가 멀다 하고 ‘사죄 패키지’를 내놓는 폴크스바겐, 우리가 이러니 어찌 한국을 봉으로 보지 않겠는가.

최영해 국제부장 yhchoi65@donga.com
#폴크스바겐#도요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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