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러운 올드카…결함에 녹까지 생겨도 ‘무대책’

  • 동아경제
  • 입력 2016년 1월 8일 0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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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부터 2010년 2월까지 생산된 일부 라세티 프리미어가 작업공정 하자로 인해 기포 형태의 녹이 발생하고 있다. 운전자 제공
2008년부터 2010년 2월까지 생산된 일부 라세티 프리미어가 작업공정 하자로 인해 기포 형태의 녹이 발생하고 있다. 운전자 제공
2000년대 후반 아반떼와 함께 국산 준중형 부흥기를 이끌었던 한국GM 라세티 프리미어가 출시 9년 만에 애물단지로 전락하는 모양새다. 해당 차주들은 녹과 관련한 결함을 호소하고 있지만 제작사인 한국GM이 보증기간 만료를 이유로 한 발짝 물러나면서 난감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

본보는 앞서 지난 2012년 9월 ‘3년 만에 썩어가는 車’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라세티 프리미어 녹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당시 교통안전공단 산하 자동차결함신고센터에는 이 같은 신고가 90건이 넘는 등 불편을 호소하는 운전자가 많았다.

라세티 프리미어는 2008년 출시 이후 줄곧 운전석 쪽 뒷바퀴 사이드스텝과 펜더에 기포 형태의 녹이 퍼지는 현상 때문에 현재까지도 개선 요청이 끊이질 않고 있다. 라세티 차주 표정협 씨는 “다른 곳은 괜찮은데 유독 사이드스텝 끝부분에 울퉁불퉁 녹이 생겼다”며 “온라인 동호회에서는 집단 대응을 계획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갖고 있다”고 했다.

한국GM 측은 하자를 인정하고 보증기간 내 차량에 한해 지난해 2월까지 녹과 관련한 무상 수리를 해왔다. 이후부터는 유상으로 전환해 대응중이다. 한국GM 관계자는 “2008년부터 2010년 2월까지 생산된 일부 라세티 프리미어의 작업공정에 하자가 있었다”며 “이에 따라 당시 5년, 주행거리 10만km 이내 차량들의 무상 수리 캠페인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보증 기간이 지난 차량들은 무상 수리를 받지 못하면서 항의가 빗발치고 있는 것. 표 씨는 “무상 수리를 하는지 조차 몰랐다”며 “이제는 보증 기간이 끝났기 때문에 자비로 수리를 안내받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전에 한국GM은 보증기간 초과 차량에 대해서도 보상을 해준 적이 있다. 2005년 출시한 매그너스의 경우 차량 좌우측 샤시 크로멤버 마운팅 판넬과 전방 라디에이터 하부 마우팅 판넬에 관통부식이 빈번히 발생하자 제작사와 차주들이 각각 50%씩 분담하는 형태로 2013년 11월 26일부터 2015년 12월 31일까지 수리가 진행된 것. 표 씨는 “라세티보다 연식이 오래된 매그너스는 동호회에서 집단 대응에 나서자 무상 수리를 해줬다”며 “같은 고객으로서 형평성을 맞추려면 당연히 합당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종훈 자동차품질연합 대표는 “제작 결함이라면 보증기간이 지났더라도 탄력적으로 운영할 필요가 있다”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리콜을 통해 모든 소비자들에게 알려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대표는 또 “리콜은 무상 수리와 달리 그 차량을 가진 모든 소비자에게 고지를 해야 하고, 리콜한 부분에 대해서도 정부에 보고해야 해 제작사들이 꺼려한다”며 “리콜은 회사 브랜드 이미지에도 영향을 주고 비용도 많이 들 수 있지만 무상 수리는 들어오는 차만 수리해주면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국내에선 녹과 관련된 정확한 규정이 없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권고사항(차체부식 품질보증기간 5년)은 있지만 꼭 지켜야할 의무는 아니다. 그마저도 안전운전에 직접적인 영향이 있어야 해당된다. 국토교통부 자동차운영과 관계자는 “녹에 관한 제작사 보증 규정은 없다”면서 “관련법을 만들거나 강화하기 위해선 매년 열리는 국제회의에서 안건이 100% 찬성돼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부식 보증은 제작사 재량”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리콜 규정의 모호함도 소비자들과 자주 마찰을 빚는 원인이다. 예를 들어 2009년 생산된 르노삼성차의 SM3는 장시간 주차 후 시동을 걸 때 가끔 전자제어장치(ECU)가 작동해 출발이 되지 않는 현상이 있었지만 리콜 대신 무상 수리로 대처했다. 2005년 생산된 젠트라는 종종 와이퍼 작동이 제대로 되지 않아 운전자의 시야를 방해했지만 이 차량도 리콜되지 않았다. 규정의 명확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해외에서도 사정은 비슷하지만 워낙 자동차 결함에 대한 기준이 엄격해 제작년도와 주행거리에 상관없이 리콜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미국은 지난 2014년 쉐보레 스파크의 보닛 걸쇄 부식으로 9만3834대가 리콜됐고, 2012년과 2013년에는 각각 포드와 GM이 차량 문짝 부식과 관련해 각각 20만대, 45만대를 시정조치 받은 사례가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과 교수는 “미국 고속도로교통안전국(NHTSA)에서는 같은 차에서 두 세 차례 같은 문제가 생기면 바로 조사에 착수하다보니 해당 제작사가 웬만한 문제는 정부가 움직이기 전에 미리 리콜을 해준다”며 “이와 같은 소비자 중심의 공공기관이 국내에는 거의 없기 때문에 소비자 입장에서 하소연 할 곳이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진수 동아닷컴 기자 brje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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