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 한 품목이라도 세계 제일로… ‘질’ 혁신으로 승부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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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0년 경제성장 70년]

2013년 10월 28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가운데)이 부인 홍라희 여사(오른쪽)와 함께 서울 중구 동호대로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 신경영 선포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기록물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그룹 제공
2013년 10월 28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가운데)이 부인 홍라희 여사(오른쪽)와 함께 서울 중구 동호대로 신라호텔에서 열린 ‘삼성 신경영 선포 20주년’ 기념식에 참석해 기록물을 살펴보고 있다. 삼성그룹 제공
1993년 6월 4일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현 삼성전자 회장)은 일본 도쿄(東京)에서 삼성전자의 경영 현장을 지도해 온 일본인 고문들과 삼성이 지닌 문제점들에 대해 회의를 했다. 새벽까지 이어진 회의에서 이 회장은 삼성 뿐 아니라 국내의 디자인 수준을 어떻게 올려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털어 놓았다.

삼성전자 정보통신부문 디자인부서를 지도했던 후쿠다(福田) 고문은 삼성전자에서 4년간 근무하면서 보고 느낀 점을 이야기했다. “일류상품은 디자인만으로는 안 되고 상품기획과 생산기술 등이 일체화되어야 한다. 삼성은 상품기획이 약하다. 개발을 해도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장에 물건을 내놓는 타이밍도 놓치고 있다.”

이른바 ‘후쿠다 보고서’에서 거론된 사항들은 그동안 이 회장이 숱하게 지적하며 고칠 것을 당부해온 고질적 업무관행이었다. 이 회장은 도쿄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향하는 기내에 동승했던 사장단에게 이 사실을 이야기하고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논의하게 했다. 그 논의는 프랑크푸르트에서도 이어졌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한 이 회장은 세탁기 조립 라인에서 직원들이 세탁기 덮개 여닫이 부분 규격이 맞지 않아 닫히지 않자 즉석에서 덮개를 칼로 깎아 내고 조립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 품질고발 사내방송 프로그램 비디오테이프를 받아 보고 또 한 번 충격을 받았다. 6월 7일 마침내 이 회장은 비장한 각오로 임원과 해외주재원 등 200여 명을 프랑크푸르트 캠핀스키 호텔로 불러 모아 새로운 삼성을 여는 회의를 주재했다.

회의의 주제는 “국가도 기업도 개인도 변하지 않으면 살아 남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 회장은 “삼성이 뼈를 깎는 아픔을 감내하고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며 “삼성은 이제 양 위주의 의식, 체질, 제도, 관행에서 벗어나 질 위주로 철저히 변해야 한다”는 내용의 ‘삼성 신경영’을 선언했다.

신경영 선언 이후 이를 전파하기 위한 회의와 교육이 숨가쁘게 이어졌다. 6월 24일까지 프랑크푸르트, 스위스 로잔, 영국 런던에서 이 회장이 주재하는 회의와 특강이 이어졌다. 7월 4일부터는 일본에서 도쿄, 오사카, 후쿠오카로 옮겨가며 8월 4일까지 회의와 특강이 계속됐다.

삼성은 불량을 없애기 위한 제품 질 혁신부터 시작했다. 생산라인을 중단시키더라도 불량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낮추도록 했으며, 한 품목이라도 좋으니 세계 제일의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 사람의 질을 높이기 위해 인사제도를 개선하고,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조직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경영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는 형식적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정보인프라를 구축하고, 사업구조를 고도화시켜 나갔다.

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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