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신치영]미국의 골디락스, 한국의 골디락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7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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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치영 경제부 차장
신치영 경제부 차장
미국이 또다시 ‘골디락스’ 경제를 구가하고 있다. 2005년 이후 10여 년 만이다. 골디락스 경제란 높은 성장세에도 물가가 낮게 유지되는 경제 호황기를 뜻한다. 영국의 전래동화 ‘골디락스와 세 마리 곰’의 주인공인 금발머리 소녀의 이름에서 유래됐다. 동화 속에서 주인공 골디락스는 숲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다 발견한 오두막에서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의 수프를 먹고 적당한 쿠션의 침대에서 편하게 쉰다.

미국은 올해 2005년 이후 처음으로 3%대의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1%대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되는 유럽연합(EU), 일본과 대조적이다. 지난달 실업률은 5.5%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자연실업률을 감안한 완전고용으로 보는 5∼5.2%에 근접했다.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준 목표치(2%)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뉴욕 특파원으로 머물며 취재했던 미국을 떠올려보면 지금 미국 상황은 격세지감이 든다. 주택대출을 갚지 못해 집을 압류당한 사람들이 자동차에서 생활하고, 실업수당을 받으려는 실직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매출이 고꾸라져 대형 쇼핑몰들이 문을 닫는 미국이 아니었던가.

미국이 지금 호황기를 누릴 수 있는 것은 에너지 혁명, 제조업의 부활 등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가장 큰 원동력은 가계의 빚 부담을 꾸준히 줄여온 덕분이다. 미국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 빚더미에 빠진 가계를 되살리기 위해 강력한 가계부채 축소 프로그램을 실시해왔다. 주택 압류 위기에 놓인 저소득층과 중산층의 빚을 일부 탕감해줬고 주택저당채권을 사들여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시켰다. 일자리를 늘려 가계의 소득을 높여줬다. 그 결과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08년 135%에서 2013년 105%로 떨어졌다. 가처분소득이 늘어난 가계는 소비를 늘리기 시작했다. 국내총생산(GDP)의 70%를 차지하는 가계소비가 늘어나니 자연스럽게 경제성장률이 높아진 것이다.

한국에도 골디락스라고 불리는 시장이 있다. 부동산시장이다. 주택 거래는 사상 최대치인데 집값은 크게 뛰지 않는다. 일부에서 이를 두고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골디락스라고 말한다.

미국의 골디락스와 다른 점은 빚을 줄인 미국과 달리 가계 빚을 늘린 결과라는 것이다. 지금의 부동산 호황은 치솟는 전세금에도 매물을 찾을 수 없는 전세난에 지친 세입자들이 대거 내 집 마련에 나섰기 때문이다. 사상 초유의 저금리는 세입자들의 내 집 마련 열풍에 기름을 부었다. 그 결과 가계부채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달이 차면 기운다는 말처럼 떨어진 금리는 언젠가 오르기 마련이다. 미국이 금리를 올리는 연내 금리인상이 가시화될 수도 있다. 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한국은행 등 정책당국은 한목소리로 가계부채가 걱정이라고 하지만 가계대출을 제대로 규제할 생각은 별로 없어 보인다. 대출받는 사람들이 각자도생하는 수밖에 없다. 대출을 받기 전에 나중에 금리가 올랐을 때 매월 원리금을 갚을 수 있는 수준인지 따져봐야 한다.

미국은 소득수준을 따지지 않고 마구잡이로 주택대출을 해줬다가 대출이 부실화돼 2008년 금융위기를 맞았다. 그리스는 주변국에서 빌린 돈을 연금 등으로 흥청망청 쓰다가 부도 상태에 빠졌고 1997년 한국 외환위기는 기업들의 과도한 차입경영 탓이었다. 차입 경제는 언젠가 무너진다. 매월 나오는 ‘가계부채 사상 최대치 경신’이라는 신문기사 제목에 둔감해진 우리의 상황이 무섭다.

신치영 경제부 차장 higgledy@donga.com
#미국#한국#골디락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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