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진실이 소외된 사회… 통념을 향해 방아쇠를 당겨라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6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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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렇기는 하지만 결국 이러나저러나 내게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 사람이란 결코 생활을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고, 어쨌든 어떤 생활이든지 다 그게 그거고, 또 이곳에서의 내 생활에 조금도 불만을 느끼지 않는다고 나는 대답했다. ―‘이방인’(알베르 카뮈·민음사·2014년) 》

한 고등학교 친구를 몇 년 만에 만났다. 친구는 행정고시를 오래 준비했고 잘되지 않았다. 이제는 그만 사회로 나가볼까 고민하고 있었다. 같이 불이 환히 켜진 명동 길을 걷다가 문득 오래된 질문이 기억났다.

친구는 전교 1등을 했다. 똑똑했지만 말이 별로 없고 항상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했다. 어느 여름날 오후에 그 친구가 교실 벽에 나란히 붙어 있던 ‘대학 학과별 예상 점수’와 ‘표준직업분류표’ 앞에 서 있는 걸 봤다. 호기심이 생겨 “넌 이 중에 뭐 하고 싶어?”라고 물었다. 친구는 한 번 더 직업표를 찬찬히 보더니 “농부”라고 말했다. 농담을 다 하네, 라고 생각했지만 수업종이 울렸고 우리는 다시 책상으로 돌아갔다.

친구에게 “그때 왜 ‘농부가 되고 싶다’고 했어?”라고 10년 만에 물어봤다. 친구는 뜻밖에 어린 시절 지냈던 할머니 댁을 얘기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밭일을 했고 채소와 들꽃이 많았다고 했다. “그 기억이 계속 나서”라고 친구는 말했다.

알베르 카뮈의 ‘이방인’에 나오는 뫼르소는 철저히 눈에 보이는 것과 자신이 느끼는 것만을 말한다. 젊은이가 가질 만한 격정이나 야망, 의지는 갖고 있지 않다. 깨끗이 표백된 듯한 인식만이 남아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뫼르소는 군더더기 없이 순간을 향유한다.

뫼르소가 파멸에 이르는 이유는 사회가 이러한 식의 존재를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젊은이가 응당 가져야 할 열정, 직장에서 응당 가졌어야 할 야망, 살인이라는 행동에 응당 있었어야 할 동기가 그에게는 없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뫼르소가 총으로 쏜 것은 사람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주어지는 사회의 통념과 강요된 삶이었다고, 나는 받아들였다. 나조차 농담이라 생각했던 친구의 꿈은, 사실은 용기를 내서 말한 진심이었다.

곽도영 기자 now@donga.com
#진실#사회#통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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