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지순]임금피크제 안착을 위한 정부의 역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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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교섭 실태상 노조 반대땐 임금체계 개편 사실상 힘들어
작년 300명 이상 사업장 중 23%만이 임금피크제 도입
정부, 노사 갈등 최소화 위해 근로자 대표가 참여하는
취업규칙 변경 개선안 마련해야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부는 13일 정년 연장에 따른 ‘청년 고용절벽’ 현상을 해소하기 위하여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 대상자와 청년 채용 한 쌍당 월 90만 원씩 연간 최고 1080만 원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년 연장에 따른 임금피크제 도입을 촉진하고 절약된 인건비로 청년 고용을 늘리려는 정부의 고육지계라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내후년으로 예상되는 고령사회(65세 이상 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이상) 진입과 지속적인 저출산으로 인한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에 대비하기 위해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법정 정년제도가 도입되었다. 물론 이미 65세 이상으로 정년을 연장한 선진국에 비하면 아직 미흡하지만 우리 근로자의 실제 퇴직연령이 53∼55세에 머물러 있는 현실을 고려하면 60세 정년의 보장은 일단 획기적인 것으로 평가될 수 있다.

그러나 정년 연장은 임금 총액의 증가와 장년층의 근속기간 연장으로 기업에 과도한 재정적 부담과 인력 운영의 경직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뿐만 아니라 그러한 부담은 신규채용의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즉, 장년층의 고용 연장을 위하여 청년들의 고용이 희생되는 세대 간 고용전쟁으로 비화(飛火)될 수도 있다. 이처럼 정년 연장은 명암을 뚜렷이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정년 연장은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 필요한 국가미래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국회는 뚜렷한 목표와 세밀한 전략 없이 덜컥 정년 연장에 합의하고 말았다. 정치권의 포퓰리즘을 비판하는 이유이다.

이제 정년 연장을 안착시키는 역할은 정부와 기업에 맡겨졌다. 법률은 정년 연장을 앞둔 기업의 노사에 사업장 여건에 따라 임금체계 개편 등 필요한 조치를 하도록 의무화하였다. 정년 연장을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기업 측의 과도한 임금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노총은 노동시장 구조 개선을 위한 노사정 대타협을 거부하면서 그 사유의 하나로 기업의 일방적 임금체계 개편을 문제 삼았다. 우리 기업의 교섭 실태상 노동조합이 반대하면 임금체계 개편은커녕 임금피크제조차도 도입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작년까지 전체 300명 이상 사업장 중에서 23% 정도만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있다는 데서 알 수 있다.

사실 대다수 기업은 취업규칙에서 임금체계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취업규칙을 변경하여 임금피크제 도입 등 임금체계를 바꾸는 일이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녹록지 않다. 취업규칙을 종전보다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하면 과반수 노조나 근로자 측의 과반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가 임금피크제 도입에 동의하지 않으면 실현되기 어렵다. 근로조건의 변경이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 도입된 근로기준법의 규정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문에 사회 경제적 여건에 맞춰 기업의 경쟁력과 노동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근로조건을 합리적으로 변경하는 것조차도 기득권을 가진 근로자 집단의 양보가 없으면 실현될 수 없다는 ‘경직성의 절벽’에 봉착하고 만다.

대법원은 다행히도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때 근로자 측이 동의하지 않는 경우라도 예외적으로 사회 통념에 비춰 그 변경이 합리성이 있으면 유효하다는 입장을 제시함으로써 약간의 숨통을 터주고 있다. 결국 임금피크제 도입을 둘러싼 기업과 근로자 측의 충돌은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다. 국회의 잘못된 입법으로 법원의 판단 부담은 커지고 어떤 결과든 기나긴 법정 투쟁으로 노와 사에는 상처뿐인 영광일 수밖에 없다. 그로 인한 경제적 손실과 시장의 불확실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

비록 정부가 노사의 임금피크제 도입을 유도하여 청년 고용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당근책을 제시하였지만 사실상 그 효과를 크게 기대하기는 어렵다. 정부는 제도 변경이나 사회 경제적 환경 변화에 맞춰 근로조건을 유연하게 조정함으로써 노사 갈등을 최소화하고 우리 경제의 동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근로자 대표가 참여하는 취업규칙 변경제도의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물론 그때까지 임금피크제 도입에 따른 기업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서 취업규칙 변경의 합리적 기준과 절차를 제시하는 것도 정부 몫이다. 시장에는 정부의 판단과 조언을 기다리는 기업과 근로자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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