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中주도 AIIB에 밀려… 동북아개발銀 또 무산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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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대통령 드레스덴 선언 후 1년… 로드맵 마련도 못해

박근혜 대통령이 북한의 경제개발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의 필요성을 밝힌 지 1년이 지났지만 좀처럼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조만간 정식으로 발족될 예정이어서 비슷한 성격의 동북아개발은행이 설자리가 없어지게 됐다는 우려도 나온다.

11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AIIB 세부 협상 과정에서 동북아개발은행 설립 문제를 중국과 논의하는 방안과 별도의 협상을 통해 논의하는 방안을 놓고 어떤 것이 전략적 측면에서 효과적인지를 검토하고 있다. 전문가들과 협의를 거쳐 이르면 하반기부터 중국 등 관련 국가들과 논의를 시작할 계획이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3월 독일 방문 기간에 ‘드레스덴 선언’을 통해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을 제안했다. 한국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6자회담 당사국과 국제 금융기관의 공동 출자를 전제로 했다.

하지만 이후 1년이 지나도록 구체적인 로드맵조차 내놓지 못하고 있다 보니 향후 논의가 얼마나 진척될지 회의적인 시각이 적지 않다. 당장 주무 부처인 기재부 내부에서조차 AIIB 세부협상이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이 의장으로 있는 미주개발은행(IDB) 등의 이슈에 비해 후순위로 밀려 있다.

정부는 “동북아라는 특정 지역에 한정해 개발을 주도한다는 측면에서 동북아개발은행은 여전히 독자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하지만, AIIB가 만들어지면서 역내에 비슷한 성격의 개발은행이 2개가 존재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또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중국이 AIIB 창립에 주력하면서 지난 1년간 한중 간에 기본 협의조차 이뤄지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은 김대중 정부 이후 잊을 만하면 다시 제기돼 온 대북정책 카드다. 박 대통령도 당 대표 시절인 2006년 9월 동북아은행 개발 설립을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막상 실무 논의 단계에 들어가면 남북 문제, 동북아 외교 문제 등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혀 흐지부지되곤 했다. 박근혜 정부 역시 치밀한 추진 전략 없이 즉흥적으로 동북아개발은행 이슈를 던졌다가 유야무야된 과거 정부의 전철을 답습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실제로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은 2013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140개 국정과제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정부는 2013년까지도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을 전혀 검토하고 있지 않다고 했다가 박 대통령이 이듬해 드레스덴 선언을 하자 부랴부랴 준비 작업에 착수했다.

일각에선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에 매달리기보다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개발은행(ADB)이나 중국 주도의 AIIB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동북아 개발펀드’(가칭)를 만들어 한국이 관리 운용의 주체가 되는 것이 더 현실적이란 주장이 나온다.

한택수 창조경제연구원 이사장(전 국제금융센터이사장)은 “중국이 AIIB를 처음 끄집어냈을 때 동북아개발은행 설립에 관한 외교적 교섭을 진행했어야 했는데 실기(失期)한 측면이 있다”며 “세계은행이나 ADB 등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동북아 개발펀드’ 혹은 ‘북한 개발펀드’를 만든 뒤 한국이 운용을 담당하는 방안을 적극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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