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직자 울리는 중복합격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0일 03시 00분


코멘트

“취업시장 교란” 비판 일어

《 지난해 하반기(7∼12월) 대졸 신입 공채를 진행한 한국타이어는 올 초 115명의 최종 합격자를 발표했지만 60여 명만이 입사했다. 한국타이어는 2013년 국내 타이어 기업 중 최초로 영업이익이 1조 원을 넘어서고 영업이익률도 15%에 이르는 초우량 회사. 신입사원의 초봉도 기본급만 3700만 원이 넘지만 최종 합격자 10명 중 4명이 입사를 포기하고 다른 기업을 선택했다. 삼성토탈도 지난해 11월 진행한 신입공채 최종 합격자 18명 중 10명이 입사를 포기했다. 이 회사는 당초 올 1월부터 3주간 삼성그룹 전 계열사의 신입사원과 함께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삼성그룹 측이 한화그룹에 삼성토탈의 매각을 선언하면서 계열사별로 교육이 이뤄지면서 이탈자가 속출했다. 》

재계 관계자는 “한화그룹 소속으로 바뀌는 것에 불만이 있을 수 있지만 입사를 포기한 이들은 다른 대기업에 합격할 수 있다는 자신감 때문에 나간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18일 통계청이 지난달 청년실업률이 외환위기의 후유증에 시달리던 1999년 7월 이후 최대인 11%를 넘어섰다고 발표했지만 구직 시장에는 대기업에 합격하고도 더 나은 직장을 찾아 나서는 이른바 ‘아웃라이어(특이집단)’가 존재하고 있다.

이들은 주요 대학의 이공계 출신으로 여러 대기업에 중복 지원한 뒤 ‘입맛’에 맞는 기업을 선택한다. 최종 합격을 하고서도 포기하는 이런 아웃라이어들 때문에 채용 시장이 교란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다른 구직자들이 취업 기회를 빼앗길 뿐 아니라 기업들 입장에서는 채용에 투자해야 하는 시간이나 비용이 커지기 때문이다.

취업포털 인크루트의 서미영 상무는 “이탈하는 중복 합격자가 늘면 기업은 늘어나는 채용 비용과 시간에 따른 부담 때문에 추가 채용마저 꺼려 전체 채용 규모 자체를 축소시키는 등 부작용이 크다”고 지적했다.

○ 구직 시장의 ‘아웃라이어’

국내 정유기업에 올 초 입사한 A 씨(26)는 삼성SDI와 현대엔지니어링, 롯데케미칼까지 모두 4곳에 최종 합격했다. 성균관대 화학공학부를 졸업한 그의 학점은 4.5 만점에 3.5점, 토익은 880점이다. 취업을 위해 공모전이나 특별한 자격증을 딴 것은 없다. A 씨는 “같은 전공의 친구 상당수가 여러 직장에 합격해 골라 갔다”고 전했다.

통상 매년 국내 취업 시장의 구직자는 약 100만 명에 이른다. 이 중 절반 이상은 기존의 미취업자이며 40만 명 정도가 새로운 구직자들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에 따르면 국내 30대그룹이 올해 채용할 수 있는 인력은 12만 명 수준이다. 서 상무는 “40만 명 중 약 10%인 4만여 명이 2곳 이상의 기업에 중복 합격하는 구직자들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

이들 구직 시장의 아웃라이어 상당수는 서울대나 KAIST 포스텍 등 주요 대학 출신의 전자공학과와 화학과, 기계과 등 이른바 ‘전화기’ 전공의 남성 구직자들이다. 또 금융권과 같이 특화된 분야의 전문성을 지닌 이들이라는 게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4대그룹 주력 계열사의 인사팀 관계자는 “엔지니어 부문 합격자의 상당수는 중복 합격자로 이 중 20∼30%는 지방 근무를 꺼려 입사를 포기한다”고 말했다.

○ 줄어드는 채용 규모

주요 대학의 이공계 출신이나 금융권이 아니더라도 중복 합격을 하는 사례도 있다. 최근 대기업들이 스펙 대신 주관적인 역량을 평가하는 시스템을 점차 강화하는 추세 때문이다.

롯데마트와 동화기업, 하이마트에 최종 합격했지만 현대자동차 계열사에 입사한 B 씨(25)는 중앙대 경영학부 출신이다. 스펙은 특별할 게 없지만 그의 ‘필살기’는 어느 회사에서든 통했다. 그는 면접 전에 해당 기업의 영업소를 방문했다. 특정 시간 동안 얼마나 많은 고객이 찾아와 실제 구매하는지를 체크하고 판매를 늘리기 위한 나름의 해결책을 딱 한 페이지로 정리해 면접장에 들고 갔다.

중복 합격자들에 대한 구직자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적지 않다. 채용에 대한 직간접적인 압박으로 필요 이상의 인력을 뽑는 대기업들이 중복 합격자로 결원이 생겨도 굳이 추가 채용을 하지 않아 채용 규모 자체가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2년째 직장을 찾고 있는 한 구직자는 “취업 시장에서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뚜렷해 답답할 때가 많다”며 “기업들이 중복 합격자를 막을 수 있도록 필기시험이나 면접일정 등을 조정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세진 mint4a@donga.com·강유현 기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