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지표는 立春… 체감경기는 大寒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4일 03시 00분


코멘트

물가상승률 두달째 0%대라도 장바구니 물가 높아 체감못해
2014년 취업자 2.1% 늘었다지만 대부분 5060… 청년실업 치솟아

한국 경제의 지표상 수치와 체감 경기 사이의 괴리가 커지고 있다. ‘A학점’을 줄 만한 지표가 적지 않지만 실제 경제 여건이나 살림살이가 좋아졌다고 느끼는 기업, 가계는 많지 않다. 자칫 정부 당국이 지표 관리에만 매달리다가 국민에게 꼭 필요한 정책의 처방 타이밍을 놓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제기되고 있다.

3일 통계청에 따르면 1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 대비 0.8% 오르는 데 그쳐 두 달 연속 0%대에 머물렀다. 유가 하락의 영향이 컸다. 하지만 국민은 저물가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장바구니 물가가 높은 탓이다. 돼지고기(10.5%), 쇠고기(5.2%), 상추(58.0%), 부추(84.2%), 하수도료(4.7%), 고등학생 학원비(3.7%), 중학생 학원비(2.7%) 등은 지난해 같은 달과 비교해 많게는 80% 이상 올랐다.

이영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유가 하락이 실제로 생활비 부담 감소로 이어질 때 비로소 국민은 저물가를 체감할 수 있다”며 “저물가를 실감하지 못하는 국민에게 디플레이션 논쟁은 멀게만 느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 지난해 경상흑자 사상 최대라지만 수입 더 줄어든 탓 ▼

경상수지의 경우 지난해 흑자가 894억2000만 달러(약 98조2600억 원)로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 그럼에도 기업들의 표정은 어둡다. 내막을 살펴보면 수출이 잘돼서라기보다는 수입이 더 크게 줄어든 ‘불황형 흑자’이기 때문이다. 수출에 의존하던 성장엔진은 식어 가고 있다. 무역협회에 따르면 2013년 수출의 경제성장 기여율은 37.7%로 2012년(51.0%)보다 13.3%포인트 하락했다. 2008년(20.1%)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고용 역시 수치상으로는 훌륭하다. 지난해 연간 취업자는 2013년보다 2.1%(53만3000명) 증가해 2002년 이후 가장 많이 늘었다. 하지만 질적으로는 오히려 나빠졌다. 신규 취업자의 82.3%가 50, 60대였다. 은퇴한 베이비붐 세대가 대거 구직 활동에 나서면서 비정규직 취업이 증가한 결과다. 반면에 청년층(15∼29세)의 실업률은 9.0%로 1999년 이후 가장 높았다. 취업 연령층 자녀를 둔 국민이 고용 증가의 효과를 체감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통계청이 발표한 지난해 12월의 실업률도 3.4%로 8% 안팎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실업률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낮은 수치였지만 이를 체감하는 이는 많지 않다.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 따라 고시 준비생, 구직 단념자 등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는데도 공식 실업 통계에서 빠져 있는 사람들을 포함하면 한국의 ‘사실상 실업률’은 11.2%까지 올라간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수치에 매몰될수록 국민과의 거리는 멀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연말정산 파동이 대표적이다. 연말정산 논란이 일자 정부는 “연봉 7000만 원 이하 근로자는 추가 세 부담이 평균 2만∼3만 원 수준에 그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합리적 수치라고 생각했지만 세 부담 증가를 ‘꼼수 증세’로 받아들인 국민의 반발에 부닥쳤다.

결국 경기지표와 무관하게 ‘국민 체감형 정책’을 얼마나 구현하느냐가 박근혜 정부의 성패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 역시 지난달 26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민이 현장에서 그 성과를 체감하지 못한다면 법을 개정하고 예산을 투입하고 하는 이런 일들이 헛수고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박덕배 현대경제연구원 전문연구위원은 “대외적으로 비치는 경제지표도 중요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라며 “지표 뒤에 숨겨져 있는 현상과 문제점을 파악해 그에 맞는 맞춤형 정책 처방을 내놓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종=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경제지표#체감경기#청년실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