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위기앞에 흩어진 현대重 노사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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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개월만에 마련 임단협합의안 부결
권오갑 사장 ‘읍소 편지’ 물거품

최예나 기자
최예나 기자
결국 현대중공업 노사의 화합과 새 출발은 실패로 돌아갔다. 노사가 교섭 시작 7개월 반 만인 지난해 12월 31일 마련한 임금 및 단체협약 잠정합의안은 조합원들의 압도적인 반대로 부결됐다. 7일 현대중공업 노조가 조합원 1만6762명을 대상으로 찬반투표를 실시한 결과 총 1만5632명(93.3%)이 참여한 가운데 반대는 66.5%(1만390표), 찬성은 33.2%(5183표)였다.

잠정합의안이 나온 날 저녁 늦게 통화한 권오갑 사장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권 사장은 조금 취하고 지친 목소리였다. “회사에서 제일 힘든 직원들 모이라고 했더니 90명쯤 왔더라”며 “영빈관(고객사 접대 공간)을 본 적도 없다고 해서 거기서 술 한 잔씩 했다”고 말했다. 그는 “노조는 최선을 다했는데 우리가 그러지 못했다”고도 했다. 노조가 임금을 13만2013원 인상해 달라고 하다 사측 제시안(기본급 3만7000원 인상)을 받아들인 것을 염두에 둔 것 같았다.

지난해 9월 ‘구원투수’ 책임을 지고 취임한 권 사장은 솔직히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흑자 나면 바로 집으로 갈게요. 월급도 버렸고(반납했고) 몸도 힘들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만날 놀고 싶어요.” 그는 이달 5일 신년사와 6일 직원들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반드시 이익을 내겠다” “노사가 힘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권 사장의 호소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노조 게시판에는 “이게 현장의 목소리다” “사장 전략 실패했다. 조용히 떠나라”는 등의 원색적인 비난이 나왔다.

이번 투표 부결 결과를 보면서 현대중공업이 아직도 예전의 위풍당당한 ‘세계 1위 조선업체’ 시절에 취해 있는 게 아닌지 우려된다. 현대중공업은 지난해 2, 3분기에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영업손실(각각 1조1037억 원, 1조9346억 원)을 잇달아 냈고 수주 목표치는 61.2%(153억 달러)밖에 채우지 못했다. 조선업계에서는 “현대중공업의 위기는 곧 한국 조선업의 위기”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저가와 물량 공세로 밀어붙이는 중국을 ‘기술력이 아직 멀었다’고 무시할 수만은 없다는 지적도 있다.

외부 위기가 극할수록 내부는 똘똘 뭉쳐야 한다. 안이 곪으면 물집이 터지고 흉터도 오래간다. 현대중공업 노사는 하루빨리 임단협을 마무리하고 내실을 다지는 데 힘을 합쳐야 한다.

최예나 기자·산업부 ye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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