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 해외소싱의 진화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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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 함량은 높고, 값은 저렴한 초콜릿 음료를 찾아라.’

올해 초 노태황 이마트 바이어는 이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 카카오 산지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는 값싼 초콜릿 음료 완제품을 수입하는 것보다 직접 농장에서 카카오 원물 파우더를 수입한 뒤, 한국 중소기업에 가공을 맡기면 기존 제품보다 20%가량 싸게 팔 수 있다는 데 착안했다. 유럽 초콜릿 기업이 주로 소유하고 있는 주요 아프리카 농장은 유통단계가 늘어나 가격이 비싸진다는 점에서 제외했다. 결국 올 3월 말레이시아 오지인 타와우 지역 농장까지 찾아가 본 뒤 카카오 파우더의 수입을 결정했다.

국내 대형마트의 해외 조달 방식이 바뀌고 있다. 해외에서 값싼 완제품을 찾아 수입하던 기존 방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카카오와 같은 원재료를 수입해 국내에서 가공하는 ‘원재료 조달’ 시대로 진화하고 있는 것. 중소 제조사가 원재료를 수입하는 것보다 대량 구매를 통해 협상력에서 우위를 가질 수 있는 대형마트가 나서는 게 원가를 낮출 수 있기 때문이다.

올 10월 커피 제조기업인 아로마빌이 내놓은 핸드드립 커피는 대기업 제품보다 20%가량 쌌다. 연간 원두 350t을 수입하며 커피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이마트가 케냐산 원두를 구입한 뒤, 아로마빌에 넘겨 원가 경쟁력을 높여준 것이다. 이마트는 이 방식이 대형마트와 국내 중소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라고 보고 관련 품목을 확대하고 있다. 올해에만 아사이베리, 연어, 돈육 등을 수입해 국내 기업이 가공한 주스, 연어캔, 베이컨 등을 매장에 내놓았다. 롯데마트도 이런 방식의 조달을 확대하는 추세다. 그룹 계열사와 함께 원재료를 구매하는 ‘통합 조달’을 통해 구매 협상력을 높이는 방법도 쓰고 있다. 대표적인 제품이 아몬드다. 롯데제과와 함께 미국산 아몬드를 시세보다 25% 싸게 대량 구매하는 것. 이 중 작고 부스러진 것은 제과가 초콜릿용으로 가져가고, 나머지는 마트가 봉지에 담아 ‘통큰 아몬드’로 시판하고 있다. 올 6월에는 막 탈피를 끝내 가격이 싼 랍스터를 미국 현지에서 산 뒤, 현지 가두리 양식장을 빌려 직접 키웠다. 석 달 뒤, 랍스터의 살이 오르자 국내에서 시세보다 10%가량 싸게 팔았다.

이처럼 주요 대형마트들이 다양한 해외 소싱 방식을 도입하는 이유는 매출이 침체된 상황에서 어떻게든 유통단계를 줄여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위기감이 팽배해 있기 때문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국내 대형마트들이 원재료 수입량을 늘리면 세계 식품 원재료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미국 월마트처럼 구매 시 협상력이 더욱 높아질 수 있다”며 “해외 소싱 규모가 올해 7000억 원을 돌파한 가운데 원재료 조달 비중도 점차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대형마트#해외 소싱#이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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