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병에 1000원대… 막걸리 투자 가로막는 ‘低價의 덫’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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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企적합업종 재지정 주목

이달 8일 서울 강북구의 한 대형마트 주류 코너. 맥주나 와인 판매대 앞에는 고객들이 몰려 있었지만 막걸리 판매대 앞은 썰렁했다. 이날 판매대에 놓인 막걸리는 10종류도 되지 않았다. 다른 주류가 많게는 100여 종류를 갖추고 있는 것과 대조적이었다. 한 소비자는 “대부분의 막걸리가 ‘그 나물에 그 밥’ 식으로 비슷해 1년에 두어 번 먹는 정도”라며 맥주를 잔뜩 카트에 담아갔다.

전통 술로 꼽히는 막걸리가 맥주나 와인 등에 밀리고 있다. 다음 달 막걸리에 대한 중소기업 적합업종 재지정 여부를 앞두고 막걸리 산업의 쇠퇴가 주목받고 있다. 과감한 투자가 없다면 막걸리의 성장이 한계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가 점차 높아지고 있다.

10일 이마트에 따르면 올해 1∼7월 막걸리 판매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9%나 감소했다. 같은 기간 와인이 8.6% 증가하고 맥주가 4.8% 늘어난 것과 대조적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막걸리가 중기 적합업종으로 지정된 2011년을 정점으로 소비량이 내리막을 걷고 있다”고 전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주류 시장에서 막걸리 점유율은 1970년대에만 해도 80%에 달했지만 2002년 4.3%로 주저앉았다. 이후 막걸리가 몸에 좋다는 인식과 한류의 영향 등으로 2010년 12.0%로 ‘반짝 상승’했지만 2011년 11.6%, 2012년 11.0% 등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막걸리 가격이 병당 1000∼3000원으로 ‘막걸리=싼 술’이라는 인식 때문에 막걸리에 대한 투자가 미비한 영향이 크다. 와인의 경우 등급제를 실시하고 사케 역시 병당 몇만 원을 호가하는 제품이 적지 않은 등 소비자의 선택 폭이 비교적 넓다. 반면 막걸리 대부분은 제품 맛이나 품질이 수년째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 막걸리 디자인 역시 대개 플라스틱 페트병을 사용하고 있는 등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정대희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전문연구원은 “막걸리가 폭넓게 소비되려면 고급화와 다양화가 시급하지만 현재의 낮은 가격으로는 관련 투자를 하기에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국내 막걸리업체의 특성상 장기적이고 과감한 투자를 하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국내 막걸리업체 600여 곳 중 연 매출액 1억 원 미만인 영세업체가 전체의 60∼70%에 이른다. 막걸리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다 보니 고품질의 제품을 생산하기보다는 저가의 제품을 판매하는 데 연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맥주 시장에서 수제 맥주가 가격이 비싼데도 적은 규모로 성공을 거두고 있듯이 영세한 막걸리업체들은 특색 있는 제품으로 승부수를 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서는 외부의 대규모 자금 수혈이 절실한 상황이다. 다만 대규모 투자 여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배중호 국순당 사장은 “막걸리업체들끼리 ‘도토리 키 재기’ 식의 경쟁을 벌일 게 아니라 마케팅, 제품 개발 역량을 갖춘 대규모 자본이 들어와야 시장이 성장할 수 있다”며 “기존의 막걸리업체들도 대규모 자본이 들어와도 끄떡없다는 각오로 경쟁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박성기 막걸리협회장은 “대기업이 막걸리 시장에 진입하면 전체 시장이 고사한다”며 “기존 업체들이 일정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시장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유영 abc@donga.com·김성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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