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屋上屋 비아냥’ 금융지주사… 이젠 無用論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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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금융지주-국민은행 ‘전산시스템 교체 충돌’로 불거진 지배구조
11개 지주社의 은행 비중 84%… 회장-행장간 태생적 대립구도
역할분담 싸고 툭하면 마찰음… 당국, 국민銀 이어 KB지주도 특검

전산시스템 교체 문제를 놓고 KB금융지주와 국민은행 간의 갈등이 표출된 것과 관련해 이번 충돌이 국내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옥상옥(屋上屋)이란 평가를 받는 지주회사제도의 무용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KB금융은 예전에도 황영기 전 회장과 강정원 전 행장이 서로 반목하고, 어윤대 전 회장과 사외이사들이 ING생명 인수를 두고 심한 내홍(內訌)을 겪는 등 지주사와 사업자회사 간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과거 어 회장과 임영록 사장(현 KB금융 회장), 우리금융의 이팔성 전 회장과 이순우 전 행장(현재는 회장 겸임) 사이의 관계 역시 매끄럽지 않았다.

금융계에선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금융지주회사제도의 문제점을 전반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직원들 ‘줄서기 경쟁’ 부작용

국내 금융지주사들은 겉으로는 은행 증권 보험 자산운용 등 금융사들을 모두 포괄하는 모습을 띠고 있지만 사실은 은행이 지주사의 거의 전부라 할 정도로 자산 구성이 편중돼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11개 금융지주사의 총자산에서 은행이 차지하는 비중은 84%였다. 결국 은행장 위에 지주회사 회장이라는 지붕이 하나 더 얹혀 있는 꼴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주사 회장이 자회사의 경영 전반을 챙기고 은행장이 은행 실무를 담당한다는 권력 배분의 원칙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지주사 회장이 관심의 대부분을 은행에 쏟게 돼 은행의 경영 실권을 쥐고 있는 행장과 사사건건 대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주사 회장 및 행장의 선임 구도도 문제다. 원래는 지주사의 사외이사들이 회장을 추천하고, 회장이 이들과 협의해 행장을 뽑게 돼 있지만 현실은 두 자리 모두 ‘관피아(관료+마피아)’ 등 외부의 ‘낙하산’이 내려오는 게 관행처럼 돼 있다. 회장의 은행 장악력이 크게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국민은행 부행장을 지낸 한 인사는 “지주회사와 회장의 역할 분담이 확실치 않다 보니 행장이 이사회 결정을 뒤집고 회장에 반기를 드는 일이 터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회장과 행장이 상하관계가 아닌 대립관계가 될 경우 직원들도 본연의 업무보다 ‘줄서기 경쟁’에 몰두하는 등의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국민은행과 KB금융에 대한 특별검사에 돌입한 금융당국도 이런 지배구조 문제를 들여다보고 대안을 내겠다는 방침이다.

○ 지주사 껍질 하나둘씩 탈피

지주사제도는 금융 선진화와 계열사 간 시너지 극대화를 목표로 2001년부터 국내에 도입됐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은 그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가 많다. 금융연구원의 지난해 말 보고서에 따르면 4대 지주사의 총자산순이익률(ROA) 등 경영지표는 지주회사가 아닌 기업은행보다 낮아 시너지 효과를 전혀 보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금융회사들은 저마다 비용절감과 경영효율을 위해 지주사라는 ‘껍질’을 하나둘씩 탈피하는 추세다. 씨티금융지주가 씨티은행과의 합병을 통해 지주사 체제를 포기했고 SC금융지주도 곧 씨티와 같은 길을 걸을 것이란 전망이 많다. 우리금융도 계열사의 분할매각이 진행됨에 따라 지주사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김우진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계열사 간에 부실이 전염되는 일을 막고 공격적 인수합병(M&A)을 할 수 있는 것은 지주회사 체제의 긍정적인 면”이라며 “다만 당초 취지에 맞지 않게 은행 보험 등 사업 자회사 간 칸막이가 허물어지지 않아 시너지 창출이 아직 미흡한 측면이 있다”라고 말했다.

유재동 기자 jarrett@donga.com
#금융지주사#옥상옥#k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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