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속의 이 한줄]라면 스토리에서 건져올린 “기본을 잘 지키자”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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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번은 그 라면가게 할머니에게 어쩜 이렇게 맛있는 거냐고 비법을 물었다. “아, 봉지에 적힌설명대로 끓이는 거지 뭐 있어.” ―라면이 없었더라면(정이현 외 7명·로도스·2013년) 》

한국인의 연간 1인당 라면 소비량은 73개로 세계 1위다. 라면의 원조인 2위 일본(43개)이나 3위 중국(33개)보다 월등히 많다. 책 속 표현대로 한국인에게 ‘라면은 음식이기 전에 내 생애와 함께해온 추억이고 역사인 특별한 그 무엇’으로 자리 잡았다.

이 책은 온 국민의 ‘솔(soul) 푸드’가 된 라면에 바치는 일종의 ‘헌정서’ 같다. 남녀노소 좋아하는 맛 좋은 라면, 가난의 상징에서 평등의 상징이 된 라면, 퍽퍽한 세상을 버텨낼 수 있게 해준 라면에 대한 여덟 가지 이야기가 담겼다. 소설가 정이현, 박성원, 이기호, 박상은 라면에 얽힌 추억을 들려주고 교수들과 과학칼럼니스트는 라면의 역사와 문화, 과학을 소개한다.

라면을 위험물로 취급하는 엄마 밑에서 자란 정이현에게 라면은 금단의 열매 같았다. 라면이 든 찬장 서랍을 열 때면 첫 미팅 장소에 도착한 여대생처럼 두근거렸다. 박성원은 20대 마지막 크리스마스에 자취방에서 홀로 라면을 끓여 먹으며 영화 ‘나 홀로 집에’를 보다가 눈물을 흘렸다. 이기호는 열한 살 때쯤 처음으로 라면을 손수 끓여 먹기 시작하면서 독립된 인격체가 됐음을 느꼈다. 책장을 덮을 때쯤 “다들 내 얘기를 옮겨 놓았다”며 공감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박상은 단골이었던 서울 종로2가 종로서적 뒷골목의 3.3m²도 안 되는 라면가게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주인 할머니에게 라면이 어쩜 이렇게 맛있냐고 비법을 물었더니 돌아온 답. “아, 봉지에 적힌 설명대로 끓이는 거지 뭐 있어.” 가장 맛있는 라면은 봉지에 나와 있는 대로 정확하게 끓인, 기본을 지킨 라면이었다. 박상은 그때부터 화려한 수사나 실험적인 시도들을 배제하고 정통적인 문법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신춘문예에 당선됐다. 무엇을 하든, 기본을 잊지 말자는 다짐이 아쉬운 요즘이다.

정임수 기자 imsoo@donga.com
#라면이 없었더라면#라면 소비량#솔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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