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가족기업 머크, 346년 장수 비결은 가치관 代물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7일 03시 00분


코멘트

하버캄프 회장이 말하는 경쟁력

346년 역사의 독일 머크의 지주회사 이머크의 수장인 프랭크 스탄겐베르그 하버캄프 회장은 “돈이 아닌 가치를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다음 세대에 남겨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라고 말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346년 역사의 독일 머크의 지주회사 이머크의 수장인 프랭크 스탄겐베르그 하버캄프 회장은 “돈이 아닌 가치를 물려주는 것이야말로 다음 세대에 남겨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라고 말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올해로 창립 346주년을 맞는 독일 머크(Merck KGaA)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제약·화학 기업이다. 1668년 창업자인 프리드리히 야코프 머크가 독일 중남부 헤센 주(州)의 소도시에 있던 작은 약국 하나를 인수한 게 효시가 됐다. 머크는 현재 ‘얼비툭스(항암치료제)’ 같은 의약품부터 코팅제, 기능성 소재 등 5만5000개가 넘는 제품을 생산하며 전 세계 66개국에서 연 매출 111억 유로(약 16조 원, 2013년 기준)를 올리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최근 한국머크의 사업 점검차 방한한 프랭크 스탄겐베르그 하버캄프 박사는 머크의 지분 70.3%를 소유하고 있는 지주회사 이머크(E. Merck KG)의 회장이자 머크가(家) 일족을 대표하는 협의체인 가족위원회 회장이다. 하버캄프 회장은 3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머크의 장수 비결에 대해 “후손에게 돈이 아니라 가치를 물려주는 문화 덕분”이라고 말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151호(4월 15일자)에 소개된 하버캄프 회장과의 인터뷰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지주회사인 이머크와 운영회사인 머크의 관계에 대해 설명해 달라.

“지주회사 이머크는 머크의 직계 후손 및 그들과 혼인 관계로 맺어진 배우자 및 그들의 후손 150여 명이 출자한 합자회사다. 150여 명의 파트너들은 총회를 열고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해 줄 5년 임기의 가족 대표 10여 명을 뽑아 가족위원회를 구성한다. 가족위원회는 다시 파트너위원회 멤버들을 선출하는데, 머크 가문의 후손들 가운데 5명, 제약·화학 등 머크의 주요 사업 분야에 정통한 외부 전문가 4명 등 총 9명을 뽑는다. 이렇게 구성된 파트너위원회에서 머크의 최고경영자(CEO),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최고경영진 5명을 뽑는다.”

―지배구조가 좀 복잡하다.

“기업에 대한 가문의 통제력은 계속 유지하되 소유와 경영을 엄격하게 분리하기 위해 고안한 구조다. 머크의 일상적인 비즈니스는 전문 경영인에게 전적으로 일임한다. 인수합병(M&A)이나 사업부 매각과 관련한 결정도 그 규모가 1억 유로를 넘지 않는 한 머크가(家) 사람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머크 최고경영진이 재량껏 결정한다. 하지만 머크 최고경영진에 대한 선임·해임 권한은 이머크의 파트너위원회가 가지고 있다. 경영에 대한 관리 감독을 통해 가문의 통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그룹의 전체 전략 수립처럼 중대 사안에 한해 파트너위원회가 관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1억 유로가 넘는 대규모 M&A처럼 그룹 전체의 전략을 바꿀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선 반드시 파트너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면 경영자가 주주의 이익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

“머크의 최고경영진 5명은 머크 가문과 혈연관계가 전혀 없지만 마치 ‘입양’된 가족처럼 대우한다. 이를 위해 머크 최고경영진 5명은 머크가 아닌 이머크에 속하게 했다. 즉, 월급을 주는 주체가 머크의 모회사인 이머크다. 전 세계 3만8000여 명의 머크 직원들과 고용주가 다르다. 이들 5명은 가족위원회 회장인 나와 파트너위원회 회장과 함께 자신이 내린 업무 결정에 대해 무한 책임을 져야 한다. 특히 재임기간 중 자신이 직접 관여한 결정에 대해서는 회사를 떠난 이후로도 5년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 이렇게 제도를 운영하기 때문에 외부에서 영입된 비(非)머크가 사람들이라도 오너와 같은 입장에서 보다 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의사결정을 한다. 감히 말하지만 머크의 지배구조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자부한다.”

―머크가(家) 사람들 중 일선 경영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들은 어떻게 채용하나.

“현재 머크 가문의 일원이 머크 회사의 신입사원이나 중간 관리자로 고용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들이 머크에서 일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다른 회사에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은 후 머크의 고위 직급에 지원하는 방법뿐이다. 지원을 했다고 다 뽑아주는 것도 아니다. 엄격한 평가 과정을 거쳐 가문의 일원이라는 후광 없이 자신의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승부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일족에게만 일할 자격을 준다.”

―머크가 346년이나 장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언제나 회사의 이익을 가문의 이익보다 먼저 생각해 온 가치관이 주효했다. 이런 가치관은 우리, 즉 머크가(家) 사람들은 회사를 소유한 게 아니고 후대를 위해 신탁관리를 맡고 있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믿음을 가족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이런 믿음 때문에 우리는 분기별 실적에 연연하지 않고 언제나 세대를 뛰어넘어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시각을 견지할 수 있었다. 당장 돈을 버는 데 급급하기보다는 다음 세대가 물려받을 가치와 유산을 키우는 데 더 큰 무게를 둔다.”

―경영자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유럽에서 꽤 유명한 유제품 전문 가족기업 한 곳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창업자의 나이가 90세가 넘었는데도 그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지를 않았다. 심지어 70세가 넘은 아들조차 은퇴했고 손자마저 회사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아흔도 넘은 창업자의 독단이 심하다 보니 회사가 잘될 리 만무했다. 그 집안에서 유일하게 행복해하는 사람은 창업자의 증손자뿐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았다. 많은 가족기업에서 오너들이 나이를 한참 먹었는데도 계속 경영 일선에 남아 있으려는 우를 범하곤 한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도 10년, 길어야 15년 정도 최고 위치에 있다 보면 창의성이 메말라 간다. 그 이후로는 더이상 회사에 도움을 주기 힘들다. 장기 집권하면 기업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방실 기자 smile@donga.com
#이머크#하버캄프#경쟁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