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구글 무한동맹 “기술의 한계 돌파”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8일 03시 00분


코멘트

향후 10년간 모든 특허 공유… 소송 잦은 IT생태계 새 바람

삼성전자와 구글의 ‘포괄적 특허 크로스 라이선스 계약’ 체결은 세계 정보기술(IT) 업계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분야 선도 기업이 장기간 모든 특허를 공유하기로 했다는 점에서 매우 이례적이다.

기술의 변화 속도가 빠른 IT 업계에서 최상위 두 기업이 10년간 모든 특허(앞으로 개발할 특허 포함)를 공유하기로 한 건 전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삼성전자는 그동안 하드웨어 분야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온 소프트웨어 분야의 기술력을 키우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지난해에도 에릭 슈밋 회장과 래리 페이지 최고경영자(CEO) 등 구글의 핵심 관계자들이 줄줄이 삼성전자 본사를 방문해 이재용 부회장과 면담했다. 이런 과정에서 두 회사는 서로 이해의 폭을 넓혔고, 이번 계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했다는 분석이다.

IT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시장의 성장 둔화, 후발 기업들의 추격, 차세대 성장동력 발굴의 어려움 등 당면 문제들을 구글과의 ‘특허 연합전선’으로 돌파하려 한다”고 풀이했다.

○ 파격적인 10년간 특허 공유

삼성전자와 구글의 이번 결정은 공유하기로 한 특허 범위에 사실상 제한이 없다는 게 특징이다.

삼성전자가 이전에 다른 유명 IT 기업들과 맺은 특허 공유 계약과는 차원이 다르다. 삼성전자는 마이크로소프트(MS), 코닥, SK하이닉스, 도시바, 샌디스크 등 IT 기업들과 특허 공유 계약을 체결했으나 모두 특정 분야에 국한됐다. 예를 들어 MS와는 휴대전화 운영체제(OS), SK하이닉스와는 반도체, 코닥과는 카메라 관련 특허를 공유하기로 계약한 것이다.

삼성전자와 구글은 이미 시장이 형성된 스마트폰, 태블릿PC, 가전제품 등은 물론이고 미래 IT 시장의 성장 엔진으로 꼽히는 사물인터넷(IoT·Internet of Things), 스마트홈, 웨어러블 스마트기기, 로봇, 의료기기 등의 분야에서도 적극 협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규태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삼성전자 제품에 적용할 소프트웨어 기술 중 상당수가 구글 기술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구글에는 이번 특허 공유가 IT 하드웨어 분야의 기술을 축적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구글은 2011년 모토로라를 인수했고, 네스트(스마트홈)와 보스턴 다이내믹스(로봇) 같은 업체들도 인수하며 하드웨어 역량을 키우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구글과의 이번 협력이 삼성전자 성장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라 더욱 주목된다는 분석도 있다. 이건희 회장이 신년사에서 언급한 ‘시장과 기술의 한계 돌파’를 위한 전략 차원에서 구글과의 전면적인 특허 협력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 특허 분쟁 트렌드를 바꾼다

이번 삼성전자와 구글 간 계약은 소송이 잦았던 IT 업계 전반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특허 분쟁이 매년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IT 업계에 새로운 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것.

특허청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1∼3월) 특허 분쟁 건수는 전년 대비 306% 증가했다. 이 중에서도 정보통신과 전기전자 산업은 전년 대비 350%가 넘는 증가율을 보였다. 이런 상황에서 상호 특허 공유는 기업 간 불필요한 분쟁을 줄이고 경영 리스크를 예방하는 방어막 역할을 할 수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특허 공유 계약의 가장 큰 의미는 경영상의 불확실성을 없애준다는 데 있다”며 “배상금과 소송비용을 아낄 수 있는 데다 특허소송에 따라 연구개발(R&D)과 판매까지 위축되는 부작용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허 공유 계약은 서로를 신뢰한다는 의미인 만큼 양측이 강력한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계기도 된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는 구글의 웨어러블 디바이스 관련 특허를, 구글은 삼성전자의 무선통신 분야 특허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으므로 기술 발전에 드는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삼성전자와 구글 간의 협력 관계가 삼성전자와 애플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특허 10만건… ‘기술의 삼성’ 위상 높여 ▼

특허법인 아주양헌의 이창훈 특허전문 변호사는 “삼성전자와 구글이 특허 공동전선을 펼치면 애플은 상당한 부담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며 “미래에 발생할 수 있는 소송까지 고려한다면 애플도 지금처럼 감정적으로 소송전을 이어가긴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 삼성전자 기술력 인정받아

이번 특허 공유 계약은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로도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구글이 삼성전자와 10년간 특허 공유를 하기로 했다는 것만으로도 삼성전자가 IT 기업들 사이에서 얼마나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미국에서 총 4676건의 특허를 출원해 이 부문에서 2위를 나타냈다. 또 전 세계적으로 약 10만 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이규태 교수는 “구글은 모토로라를 비롯한 각종 하드웨어 분야 기업의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삼성전자의 기술을 적극 활용할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기술력이 다시 한번 인정받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세형 turtle@donga.com·김지현 기자
#삼성전자#구글#특허공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