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카페]개인정보 유출 깜깜 금감원… ‘일벌백계’ 뒷북 호들갑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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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훈·경제부
이상훈·경제부
“고객 정보 유출은 금융사에서 절대 발생해서는 안 될 사고다. 즉각 현장 검사에 착수하라.”

최수현 금융감독원장은 9일 긴급 간부회의를 소집하고 이같이 지시했다. 검찰 수사에서 개인정보 유출 건수로는 사상 최대 규모인 약 1억 건의 고객 정보가 KB국민·롯데·NH농협카드에서 흘러나간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감원의 대응을 보면서 ‘뒷문을 열어 놓고 앞문만 단속하는’ 뒷북치기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금감원은 지난해 9월 이른바 ‘통대환 대출’의 피해 사례가 늘고 있다며 소비자 경보를 발령했다. 통대환대출의 수법은 이렇다. 사채업자가 우선 여러 곳에서 받은 고금리 대출을 받은 채무자의 빚을 한꺼번에 갚아 준다. 빚을 갚아 신용등급이 올라간 채무자는 은행에서 저금리 대출을 받아 사채업자가 갚아 준 돈을 되갚고 수수료를 낸다.

겉으로는 그럴듯하지만 곳곳이 함정이다. 사채업자가 대출 수수료를 받는 것 자체가 불법인 데다 빚을 갚았다고 해서 은행이 낮은 금리로 무조건 대출을 해 주지도 않는다. 채무자가 은행 대출을 받지 못하면 결국 저축은행, 대부업체 등에서 고금리 대출을 받아 사채업자 빚을 갚아야 하기 때문에 더 깊은 ‘빚의 늪’에 빠진다.

가족끼리도 잘 모르는 재무 상황을 통대환대출 업자들은 어떻게 알고 ‘먹잇감’을 찾아냈을까. 이들은 카드사 용역 직원, 대출 모집인, 시중은행 직원 등을 통해 빼낸 고객의 금융 정보로 고금리 대출 때문에 허덕이는 채무자를 찾아 치밀하게 접근했다. 검찰이 통대환대출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번 개인정보 유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났다.

금융감독 당국은 일찌감치 통대환대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지만 피해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을 추적하지는 못했다. 금융 사기업자들이 유출된 개인정보를 활용한다는 것은 새로운 얘기도 아니다. 지난해 소비자 경보를 발령하면서 근본 원인인 개인정보 유출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면 뒤늦게 호들갑을 떨 일도 없다. 진정한 소비자 보호는 사고가 터진 뒤에 손을 쓰는 것이 아니라 사전에 문제를 예방하는 것이다. 당국은 금융회사에 호통을 치기 전에 감독 실패부터 돌아봐야 한다. ‘비정상적인 일’을 당연시하면 ‘비정상의 정상화’는 불가능하다.

이상훈·경제부 january@donga.com
#금감원#개인정보 유출#금융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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