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 없으면 창업 안된다고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일 03시 00분


코멘트

■ 벤처 창업 좌절시키는 ‘손톱밑 가시’

창업을 꿈꾸며 지난해 부산에서 상경한 이현대 씨(29)는 서울에 사는 친척 어른을 설득하는 것으로 사업을 시작해야 했다. 돈을 빌려 달라는 부탁은 아니었다. 그는 법인 사업장 소재지용으로 친척집 주소를 쓰게 해 달라고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다. 이 씨의 일터는 서울 강남의 한 공동창업센터다. 세무서에서 정한 사업장 소재지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주소를 빌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었다.

정부가 청년창업을 국정 화두로 내세우고 창업자금 지원이나 세제 혜택을 비롯한 각종 정책을 쏟아내고 있지만 예비창업가들은 사업을 시작하기 전부터 ‘손톱 밑 가시’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한다.

○ “공동창업센터에서는 창업하지 마”

창업을 했거나 창업을 꿈꾸는 사람들 상당수가 지적하는 대표적 걸림돌은 사업장 주소지 문제다. 현재 벤처기업을 포함한 모든 사업자는 세무서에 사업장 주소를 신고하고, 소유 또는 임차 여부를 밝혀야만 법인 등록을 할 수 있다. 무분별한 사업자 등록을 막고 원활하게 세금을 거두기 위한 것이라는 게 당국의 설명이다.

그렇지만 이런 절차는 예비창업가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허들’이 된다. 특히 공동창업센터를 신생 기업의 보금자리로 택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창업 자체를 막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공동창업센터는 1인 창업가들이 모여 아이디어를 교환하거나 창업을 준비하는 협업공간이다. 소액의 사용료만 내면 되거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만든 공동창업센터 ‘디캠프(D.CAMP)’에는 한 달에 수십 건의 ‘사업장 주소지’ 관련 문의가 들어오지만 세무서를 설득할 수 없다는 현실을 안 예비창업가들은 실망만 할 따름이다.

청년창업가 네트워크를 만들고 있는 명승은 벤처스퀘어 대표는 “월 100만 원 이상의 사무실 임차료를 낼 수 있는 예비창업가는 거의 없다”며 “공동창업센터 같은 저렴한 협업 공간에서 사업을 시작할 수 있어야 도전적인 창업문화가 활발하게 꽃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많은 예비창업가들은 자신의 전셋집이나 셋집을 사업장 주소로 등록해 법인을 만들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것 역시 완벽한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기금 등 공공기관의 대출이나 민간의 투자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번듯한’ 독립 사무실을 가지고 있는 게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 모바일 응용프로그램(앱) 개발회사는 ‘현장 평가 점수’가 낮아 지난해 정부 지원과제 수주에서 탈락했다. 이 회사 사장은 올해 공동 임대 사무실을 떠나 ‘있어 보이는’ 사무실을 얻어 재도전에 나섰다. 디캠프에서 창업을 준비하고 있는 김현석 씨(33)는 “우리나라에서는 미국 실리콘밸리의 성공 사례에 대해서는 ‘주차장 창업’이라고 칭송하지만 정작 커피숍에서 회의하는 국내 스타트업은 인정해 주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 창업경진대회서 아이디어 빼돌리기도


창업지원금 사용과 관련해서도 ‘손톱 밑 가시’가 있다. 올해 초 한 공공기관에서 2000만 원의 창업자금을 지원받은 A 씨는 그 돈으로 컴퓨터를 사거나 직원 임금을 줄 수 없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사용처 항목에 홍보비와 제품 개발비는 있지만 컴퓨터와 비품 구입비는 없었다. 그는 결국 가짜 영수증을 만들어야 했다.

예비창업가들은 이 밖에도 아이디어 경진대회나 창업지원금 심사 등 창업자를 배려하는 듯한 각종 지원정책의 운영 과정에 ‘손톱 밑 가시’가 숨어 있다고 입을 모은다. 그 취지는 좋지만 특히 운영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일부 아이디어 경진대회에서는 스타트업의 핵심 아이디어가 경쟁사로 빠져나가기도 한다. 주최 측이 사업기획서를 돌려주지 않고 자기들이 활용하는 방식으로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는 경우도 속출하고 있다.

창업지원금을 빌미로 일부 기관 관계자들이 공공연하게 리베이트를 요구하는 행위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는 후문이다. 창업 과정에서 정부의 용역 사업을 수주한 게임 벤처 B사 사장은 리베이트 요구를 받고 한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리베이트를 주기 위해서는 결국 재무제표를 조작해야 하는데 그것은 창업기업으로서 커다란 모욕이자 자신을 속이는 행위였기 때문이다.

이나리 은행권청년창업재단 센터장은 “벤처 창업에는 일부 ‘모르핀’ 같은 지원책보다는 불합리한 관행을 개선하는 게 훨씬 더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창업#사업장#공동창업센터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