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피아 컴백… 관치금융 부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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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록-임종룡-김근수-김익주 등… 옛 재무관료들 금융권 수장 잇단 입성
“추진력-단결력-정부와 소통 장점”… “시누이 노릇 강화… 자율 해쳐” 우려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모피아’라 불리는 옛 재무부 관료들이 주요 금융지주사와 금융 유관기관 수장 자리에 잇따라 오르고, 민간 금융회사에 대한 금융당국의 ‘시누이 노릇’이 강화되면서 관치(官治)금융 논란이 일고 있다.

금융당국이나 경제부처 당국자들은 “능력과 전문성이 있으면 경제관료 출신이 진출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시각을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다. 하지만 금융계 안팎에서는 정권 초 주요 금융권 기관장이 물갈이되는 틈을 타 모피아들이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돌아올 모피아 전성시대

5일 KB금융지주 회장으로 내정된 임영록 KB금융지주 사장, NH농협금융지주 차기 회장으로 선정된 임종룡 전 국무총리실장은 각각 행정고시 20회, 24회로 옛 재무부, 재정경제부에서 금융정책을 맡던 공무원 출신이다. 최근 취임한 김근수 여신금융협회 회장도 재경부, 기획재정부 등을 거친 관료였다.

또 7월 중 결정될 신용보증기금 차기 이사장에는 홍영만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김익주 신임 국제금융센터 원장은 기재부 국제금융국장, 무역협정 국내대책본부장 등을 거쳤고, 이원태 신임 수협은행장은 기재부 세제실 출신이다. 홍기택 산은금융지주 회장 겸 KDB산업은행장과 이순우 우리금융지주 회장 내정자를 제외하고 최근 바뀐 금융회사와 기관의 수장 자리를 모두 전직 금융관료들이 차지한 모양새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는 경제기획원(EPB) 출신인 조원동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비서관,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중용돼 ‘모피아도 한물갔다’는 말이 나왔다. 예산, 기획업무 등을 맡아 경제의 큰 그림을 그리는 데 유능한 EPB 출신들과 달리 금융, 세제를 주로 맡았던 모피아들은 위기 대응 등 미시경제에 강점을 갖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후보였던 시절 우리금융 민영화, 카드 수수료 인하 등의 이슈와 관련해 금융 분야의 공무원들이 반대하는 모습을 보인 게 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는 해석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분위기가 급변했다. 한 금융지주사 고위 관계자는 “우리금융 매각, 금융지주사 지배구조 개편 등에서 이른 시일 안에 성과를 내려면 금융관료 출신을 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인 것 같다”고 말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도 최근 “관료도 능력과 전문성이 있으면 금융그룹 회장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힘을 실어줬다.

○ 관치금융 반발 정서 확대

모피아의 장점으로는 추진력과 돌파력이 꼽힌다. 한 금융당국의 관계자는 “이번에 발탁된 관료 출신들의 면면을 보면 스펙(학력·경력)과 경험 면에서 민간 출신보다 나은 경우가 많다”라고 말했다. 모피아 특유의 ‘끌어주고 밀어주는’ 단결력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관료 경험이 금융지주사의 최고경영자(CEO) 역할을 잘 수행해 나가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 시중은행의 부행장은 “금융산업은 전형적인 규제산업으로 금융당국과의 소통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금융권의 판도가 크게 바뀌는 시점에는 힘 있는 모피아 출신이 CEO를 맡는 게 조직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이 관치금융 논란을 넘어서지 못할 경우 조직 내에서 안정적 리더십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KB국민은행 노조는 최근 성명서를 통해 “금융당국 수장이 제 식구 챙기기에 급급해 전직 고위관료 출신 인사를 민간 금융회사 회장으로 선임하라고 사외이사들을 압박하는 행위는 명백한 관치금융”이라고 비판했다. 노조는 7일부터 임 사장에 대한 출근 저지 투쟁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최근 금융감독원이 이장호 BS금융지주 회장에게 ‘장기 집권’의 문제를 거론하며 특정한 사유 없이 사퇴를 종용한 것도 ‘관치금융의 부활’에 대한 금융권의 우려를 키우고 있다. BS금융지주는 정부가 단 한 주의 주식도 갖고 있지 않은 민간 금융회사다.

채권은행들이 시장 논리에 따라 자율적으로 처리해야 할 STX그룹 구조조정이 최근 ‘당국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관치금융 현상’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채권은행의 한 관계자는 “당국자가 실무자 회의에 직접 참석해 회사를 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데 어느 은행이 반대할 수 있겠나”라며 “관치금융은 장기적으로는 금융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 모피아 ::

기획재정부의 전신인 재정경제부(MOFE)와 이탈리아의 유명 범죄조직인 마피아(MAFIA)의 합성어. 재무 관료들이 마피아처럼 세력을 구축해 금융권을 장악하는 것을 빗댄 말.

이상훈·신수정 기자 january@donga.com
#모피아#관치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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