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경영 지혜]“고객님 도와주세요”… 의외로 강력한 구걸효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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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윤리상 재무설계사는 중립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특정 상품을 판매했을 때 재무설계사가 보너스를 받게 되는 상황에서 설계사는 편향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 이로 인한 고객 피해를 막기 위해 이해관계의 상충(conflict of interest)이 있을 경우 이를 알리도록 제도화한 사례도 있다. 하지만 과연 이해상충 사실을 알린다고 해서 고객이 재무설계사의 권유를 쉽게 뿌리칠 수 있을까.

이해상충 사실을 공개하는 것이 오히려 고객에게 조언을 받아들여야만 한다는 심리적 압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당신이 X를 선택하면 나는 이익을 얻습니다”라는 메시지는 “이 조언을 따르면 제가 한 건 올리는 것이고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오늘도 헛수고하는 것이죠”라는 말을 완곡하게 바꾼 것에 불과하다. 대놓고 나를 도와 달라고 얘기하면 실제 도와줄 확률이 높아진다는 ‘구걸효과(panhandler effect)’가 작용할 수 있다.

미국 조지타운대 연구팀은 대도시에서 행인을 모아 구걸효과를 검증했다. 실험 참가자에게 조언을 주고받는 상황을 만든 뒤 이해상충 사실을 공개하거나 감췄고 고객의 수용 여부도 지켜봤다. 참가자는 A형과 B형 복권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는데 조언자는 B형 복권을 권유했다. 하지만 A형 당첨 시 받을 수 있는 상품이 더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했다. 조언자는 참가자가 B형을 선택했을 때만 이익을 얻을 수 있도록 했다.

이해상충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을 때에는 42%가 B형을 선택했다. 반면 이해상충 사실을 공개한 뒤에는 76%가 B형을 선택했다. 조언자가 직접 이해상충 사실을 공개하니 참가자는 더 큰 부담을 느꼈던 셈이다. 고객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이해상충 공개 제도가 오히려 고객의 심리적 부담을 가중시켜 좋지 않은 상품을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결과를 낳았다.

연구팀은 구걸효과를 줄이는 방법도 제시했다. 만약 조언자가 이해상충 사실을 직접 말로 하지 않고 서면으로 하면 고객은 구걸효과로 인한 심리적 압박을 덜 받았다. 또 소비자는 조언자가 같은 자리에 없을 때 더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다. 반대로 영업사원들에게는 애써 이해상충 사실을 교묘히 숨기려 하기보다는 과감하게 공개해야 더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또 다른 시사점도 제공한다.

안도현 성균관대 인터랙션사이언스연구소 선임연구원   
정리=이유종 기자 pen@donga.com
#구걸효과#이해상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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