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타나베 부인’ 다시 꿈틀… 한국 자본시장 호시탐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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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계 자금의 공습 시작되나

일본계 자금의 공습 시작되나
# 이달 16일 일본 도쿄(東京)를 방문한 김창연 우리은행 자금부장은 깜짝 놀랐다. 현지에서 채권 발행을 위해 실시한 수요 예측 조사에서 투자 의향을 밝힌 기관투자가가 110여 곳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일본의 ‘빅3 은행’으로 꼽히는 미쓰이스미토모 등 내로라하는 금융사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7월 투자 의향을 밝힌 투자가가 70여 곳에 그쳤던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김 부장은 “일본의 양적 완화로 시중에 돈은 많고 금리는 낮아지자 일본 자금이 투자할 곳을 마땅히 못 찾고 있다”며 “안전한 한국 채권에 대한 투자 희망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 일본계 은행의 서울지점에 근무하는 김모 씨(38)는 이달 들어 절반을 야근했다. 일본 본점으로부터 국내 기업에 대한 신용 분석 보고서 작성 요청이 부쩍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는 “일본에서 자산을 운용할 만한 곳이 없는 게 사실”이라며 “본점의 자금으로 한국의 우량한 중견기업에 대출해주거나 신용등급이 좋은 회사채에 투자하려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일본에서 초(超)저금리 현상이 이어지자 일본계 자금이 한국 시장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일본 투자자들이 연이은 양적 완화로 유동성이 풍부해진 가운데 자국에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하자 국내 기업이 발행하는 사무라이 본드(엔화 표시채권) 등에 투자하거나 국내 기업에 엔화대출 등을 늘리려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 일본계 뭉칫돈, 한국에 채권 투자

30일 금융계에 따르면 우리은행은 이날 엔화표시채권인 사무라이본드를 300억 엔(약 3570억 원) 규모로 발행했다. 만기 2년과 3년인 채권의 발행금리(연리 기준)가 각각 0.77%, 0.87%였다. 금리가 1%에도 미치지 못하는 데다 가산금리가 1년여 전과 비교했을 때 반토막 가까이 줄었는데도 투자자가 몰린 것은 이례적이었다.

KT도 이달 사무라이본드를 통해 300억 엔 조달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일본 투자자는 보수적이기 때문에 만기가 짧은 채권을 선호한다’는 공식도 깨졌다. 만기 3년과 5년의 발행 금액이 각각 192억 엔, 68억 엔으로, 만기 2년(50억 엔)보다 많았다.

정책금융공사 역시 지난달 사무라이 본드 200억 엔을 발행했다. 2년 만기 채권의 금리가 0.58%로 이는 발행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역대 최저 금리를 기록했다. 신한은행도 이런 추세를 감안해 올해 하반기(7∼12월) 사무라이 본드를 발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일본계 은행의 국내 지점도 연신 함박웃음이다. 2012년 1∼9월 당기순이익이 상위 5위인 외국계은행 중 일본계가 미쓰비시도쿄(2위)와 미즈호코퍼레이트(3위), 미쓰이스미토모(5위) 등 3곳이나 됐다. 그간 유럽이나 미국계 은행이 선두를 달린 것과 대조적이다. 금융계 관계자는 “일본 은행의 본사 차원에서 국내 우량 기업에 엔화대출을 해주거나 회사채를 매입하려는 수요가 많아진 데 따른 것으로, 일본의 양적 완화와 저금리가 이어지면서 이런 추세도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자금을 대거 들여와 국내 건설사의 해외 자금으로 활용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한국무역보험공사는 일본계 은행과 국내 건설사의 해외프로젝트에 자금을 유치하는 내용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할 예정이다.

○ 일본 자금 본격 이동은 아직…

다만 국내 주식 및 채권 시장에서서는 엔화 유입이 감지되고 있지 않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9일까지 일본계 자금은 주식은 1520억 원이, 채권은 131억 원이 각각 빠져나갔다. 이는 엔저 쇼크로 국내 기업들의 순익이 악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국내 주가가 하락한 데 따른 것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국내에 몰리는 투기성 자금인 ‘핫머니’도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국내 시장에서 엔 캐리 트레이드가 현실화될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린다. 김선태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팀장은 “한동안 엔화 약세가 이어질 것이고 한국의 금리가 일본보다 높기 때문에 하반기 엔화의 국내 시장 유입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며 “다만 이는 경기가 회복되는 기대심리가 형성되고 국내 환율 시장이 안정되어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고 말했다.

반면 엔 캐리 트레이드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다. 다이와증권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양적 완화 정책을 펴면서 한국에 자금이 유입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한국에 투자되는 일본계 자금은 엔저 현상으로 엔화를 원화로 환전할 때 환차손을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와타나베 부인 ::

저금리가 계속된 일본 대신 높은 금리를 주는 해외에 투자하는 일본의 주부를 지칭한다. 한국의 김 씨나 이 씨처럼 일본의 흔한 성을 딴 용어.

:: 엔 캐리 트레이드 ::

금리가 상대적으로 낮은 일본의 엔화를 빌려 금리가 높은 다른 국가의 통화나 자산 등에 투자하는 것. 이와 반대되는 거래를 엔 캐리 트레이드 청산이라고 한다.

:: 아베노믹스 ::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제정책. 2%의 인플레이션 목표를 내걸고 무제한 금융 완화와 마이너스 금리정책 등을 통해 일본 경제를 장기침체에서 탈피시키겠다는 기조다.

:: 사무라이 본드 ::

일본 채권시장에서 비거주자인 외국 정부나 기업이 발행하는 엔화 표시 채권. 미국의 양키본드, 영국의 불도그본드와 함께 국제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대표적인 국제 채권.

김유영·한우신 기자 abc@donga.com
#자본시장#와타나베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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