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도 파열 3년새 2배로… 30년 넘은 노후관이 ‘단수 지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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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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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자원公 “물값 인상 외엔 해결책 없다”

《 설날이었던 지난해 2월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주민 12만 명은 한겨울에 얼굴도 씻지 못하고 새해를 맞는 ‘날벼락’을 맞았다. 영하 5도를 밑도는 추위에 설치한 지 20년이 넘은 상수도관 밸브가 터져 버린 것. 이 사고로 주변 지역은 사고 당일 12시간 동안 물 공급이 중단됐고, 관 보수 공사로 이틀이 지난 5일에도 종일 수돗물 공급이 끊겼다. 최근 이 같은 상수도 관로(管路) 사고가 늘어나고 있다. 설치된 지 20년 이상 지난 노후 상수도 관로가 수압을 견디지 못하고 터지거나 낮은 기온에 낡은 파이프가 얼면서 균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파이프 교체 외에는 방법이 없는 상황이지만 정부와 관계 기관은 예산 부족을 이유로 특별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고 있다. 수도관 관리를 전담하는 한국수자원공사는 ‘수도요금 인상’을 대책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정부의 반대로 난항을 겪고 있다. 》
○ 3년 만에 사고 건수 두 배로 증가

26일 수자원공사에 따르면 2010년 발생한 국내 상수도 관로 사고는 104건으로 3년 전인 2007년 52건에 비해 2배로 늘어났다.

또 상수도 사고는 매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2006년 70건에서 2007년 52건으로 줄었을 뿐 2008년 69건, 2009년 78건, 2010년 104건 등 꾸준히 늘고 있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지난해 전체 사고 건수가 아직 집계되지 않았지만 증가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2010년 한 해 동안 단수 사고로 물을 공급받지 못한 국민은 경기 성남시 인구와 비슷한 97만 명, 단수 시간은 458시간으로 집계됐다.

상수도 사고는 앞으로 더욱 잦아질 것으로 보인다. 사고 원인이 설비 노후에서 비롯된 것으로 배관 교체 외에는 특별한 대책이 없기 때문이다. 최근 5년 동안 일어난 상수도 관로 사고 373건 중 절반에 가까운 46.9%가 노후시설이 원인이었다. 국내 관로 중 30년 이상 된 노후관은 2011년 460km(9.3%)에서 2020년에는 1063km(22%)로 배 이상으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더욱 큰 문제는 국가 산업단지에 상수도를 공급하는 공업용 수도다. 수자원공사의 내부 보고서 ‘광역 및 공업용수도 취약구간 현황’에 따르면 영남권 주요 기간 산업단지의 관로 대부분이 30년을 넘어 단수사고에 취약한 것으로 분석됐다. 포스코에 매일 260t의 물을 공급하는 포항공업용수도의 경우 설치한 지 40년이 넘었다. 울산 석유화학단지에 물을 공급하는 울산공업용수도(47년)와 창원공업용수도(45년) 역시 40년이 훌쩍 지났다. 특히 창원지역 공업용수도는 최근 실시한 안전진단에서 모든 관로의 부식 상태가 위험 등급인 ‘D등급’을 받았다. 상수도를 관리하는 국토해양부 관계자는 “이들 산업단지에서 하루에도 수천억 원어치의 공산품이 생산된다”며 “이들 노후관에 문제가 생긴다면 피해 규모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노후 수도관 문제로 ‘물 대란’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 “해결책은 물값 인상”

문제는 이에 대한 뾰족한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광역상수도는 국토부와 수자원공사, 지방상수도는 환경부와 각 지방자치단체가 관리를 맡고 있다. 수자원공사가 ‘도매 시장’ 역할을 담당해 각 지자체에 1차 정수된 물을 공급하고, 주요 국가 산업단지에는 자체적으로 물을 공급한다.

수자원공사는 재원이 없는 만큼 수돗물 값을 올려야 노후 관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권형준 수자원공사 경영관리실장은 “2005년 이후 상수도 요금은 m³당 610원으로 7년째 동결됐다”며 “이로 인해 주요 공공요금 중 현실화율이 가장 낮다”고 지적했다. 현실화는 제조원가 대비 요금의 수준을 보여주는 지표다. 현실화율이 낮다는 건 원가보다 물값이 싸다는 뜻이므로 그만큼 적자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2000년 이후 노후 관로는 국가 지원 없이 수자원공사 재원으로 처리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국내 관로 사고 증가는 수돗물 값 동결 시기와 일치한다. 수자원공사 측은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예산이 제한된 상황에서 물값 수입이 원가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노후관 교체 여력이 없었다”고 설명한다. 수자원공사는 물값 인상에 따른 물가 영향이 전기요금의 5% 수준으로 큰 영향을 끼치지 못하는 만큼 향후 수돗물 값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수자원공사가 요구하는 물값 인상률은 원가 수준인 20% 정도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2인 가정의 월평균 수도요금은 현재 1만1429원으로 통신요금(13만1500원)이나 대중교통비(5만6315원), 전기요금(4만4416원)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 물값 인상에 심란한 정부

반면 정부의 입장은 복잡하다. 주무 부처인 국토부를 제외한 나머지 부처들이 대부분 ‘수돗물 값 인상 불가’를 외치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관로 노후화와 국내 물 산업 발전 등을 고려하면 수돗물 값 인상의 필요성은 인정한다”고 말했다. 특히 상수도 요금이 7년간 동결돼 다른 공공요금과의 형평성을 생각하면 가격을 올리는 게 옳다는 입장이다.

국토부 측은 “물가 당국이 물가 인상 우려 때문에 실제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작은 물값 상승을 막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또 수자원공사로부터 물을 받아 각 가정에 공급하는 지자체들이 행정안전부를 통해 물값 인상에 반대하고 있다.

수자원공사 측은 “물값을 인상해야 최소한의 노후 관로 교체가 가능하다”며 “7년 동안 요금이 동결된 만큼 앞으로 물값 상승을 강력히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재명 기자 jmpark@donga.com
#상수도#물값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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